達生之情者  不務生之所无以爲 (달생지정자 불무생지소무이위)
삶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삶을 받아들인다.
죽음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죽음을 거역하지 않는다.
達命之情者 不務知之所无奈何 (달명지정자 불무지지소무내하)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인간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는다.

좋은.음식과 웰빙식단(well-being)을 먹어도 건강하지 않고 長壽(장수)를 추구해도 長壽하지 못하고 건강하려고 노력하지만 병에 걸린다면 인간의 노력이 오히려 건강과 장수에 累(누)가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건강과 장수는 타고난 생명력을 보전(保全. 보호하고 온전하게 함) 함만 못한 것이다. 무리한 운동과 과도한 건강 염려증, 질병에 대한 두려움 등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或者(혹자)는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知識人의 愚昧化(우매화)를 논하는데 선거에 있어서 다수결의 원칙, 이것은 大衆(대중)의 愚昧化의 원칙과 다름이 아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침공, 이것은 미국국민들이 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과 살인의 전쟁을 恣行(자행)한다.
이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

陶淵明(도연명)은 歸去來辭(귀거래사)에서 말한다.
寓形宇內復幾時(우형우내부기시)  이 몸을 이 세상에 맡긴 지 몇 해 인가?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내가 오는 것과 가는 것을 거역 하겠는가?
聊乘化以歸盡  (료승화이귀진)    잠시 이 세상에 올라탔지만 이제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려 하느니
樂夫天命復奚疑(낙부천명부해의)  다만 이 삶과 세상을  즐길 뿐이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인간의 생사운명을 좌우하는데 인간의 지혜는 부질없는 것이다.
陶淵明은 達生 達命의 道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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