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篇  <秋水>


莊子釣於僕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 
장자조어복수 초왕사대부이인왕선언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  乎 
영기사위유골이귀호  영기생이예미어도중호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왕이 보낸 신하가 찾아와 왕의 뜻을 전달하기를 “부디 나라 안의 정치를 맡기고 싶습니다.”
‘여기 廟堂(묘당:제사지내는 곳)에 귀히 모셔진 3천년된 신령한 거북이가 있다. 그대는 차라리 죽어서 귀히 모셔지는 神龜(신구:신령한 거북이)가 되겠는가, 아니면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라겠는가?  그대는 돌아가시오.”

孔子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죽음의 이치를 알 수 있다(不知生 焉知死 부지생 언지사)” 라고 하였지만 세상의 이치는 평생을 살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더구나 죽음의 도리는 더더욱 不可解(불가해)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은 사람도 똑같이 喜怒哀樂(희노애락)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息盡喜何立 촉루식진희하립: 해골과 송장에도 어찌 생각이 없다 하겠는가!)

盛大(성대)한 장례식과 화려한 墳墓(분묘) 수 백년 이어지는 祭祀行列(제사행렬)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산사람들의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죽은사람들은 이러한 외피(外皮)적이고 화려한 장례와 제사치레를 알지 못하며 또한 관심도 없다.
幽宅(유택:죽은 사람의 무덤)이 生宅(생택“살아있는 사람의 집)보다 화려하고 國土(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의 立地(입지)를 좁히고 있다.

이것은 죽음이 삶을 밀어내고 淘汰(도태)시키는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삶을 죽음에 양보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죽은 거북이(神龜)는 말한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부모님은 그렇게 스러져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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