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篇 <秋水>

夔憐? 蛇憐蛇 蛇憐風 風憐目 目憐心 

(기연현 사연사 사연풍 풍연목 목연심)

故以衆小不勝爲大勝也 爲大勝者 唯聖人能之

(고이중소불승위대승야 위대승자 유성인능지)

외발짐승인 기는 발이 많은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발이 없는 뱀을 부러워하며 뱀은 모습이 없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움직이지 않고도 작용하는 눈을 부러워하며 눈은 안에 들어 앉았으면서도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아는 마음을 부러워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동문회가 있고 고향과 지역을 연고로 하는 모임이 있는데 이것 또한 과거의 추억과 인정(人情)에 의지하는 과거지향적 인간의 性情(성정, 본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와 비슷한 현재는 발전이 없다.

미용을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기꾼의 사기유형(類型)은 과거를 의지한다.

현재까지 성실한 사람인데 나에게 사기(詐欺)를 칠것인가? 이것은 현재를 보지 못하면 과거에 의지해서 상대방에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孔子는 60평생 60번을 변했다고 하는 것인데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이 되지 않으면 과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孔子行年六十而六十化 始時所是 卒而非之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非也
공자행년육십이육십화 시시소시 졸이비지 미지금지소위시지비오십구비야
오늘은 옳았던 것이 내일은 옳지 않을 수 있다. 60평생 옳았다고 하는 것이 59년 동안 그릇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집이나 사주관상 철학관에 가서 자신의 운명을 점치곤 하는데 과거에 의지해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주관상 점쟁이의 운명관이 맞을수 있지만 오늘과 내일이 다른 삶을 사는 日新又日新의 사람에게는 이러한 예언이나 운명관이 맞을 수가 없는것이다.

나는 대통령후보를 예언하여 맞힌 사람을 유명한 예언자라고 대중매체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약에 당신의 예언이 예상을 벗어난다면 사형(死刑)에 處(처)한다고 한 대도 이러한 무모한 예언을 할 사람이 있는가!  반문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일의 일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운명이 어떠한 정형화된 틀에 예속(隸屬)되어 있다면 인간의 존재는 鄙陋(비루)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창일(漲溢,넘쳐서 퍼져나가는)한 파도처럼 역동적으로 삶을 펼쳐나가야 한다.

이것이 미래도 나의 것으로 현재도 나의 것으로 과거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