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夫機變 罾笱罝罘 之知多  則鳥魚獸亂於上水澤矣
부기변증구저부지지다  즉조어수란어상수택의
知詐漸毒   頡 滑堅白 解垢同異之變多  則俗惑於辯矣
지사점독  힐활견백 해구동이지변다  즉속혹어변의

활, 새그물, 주살을 이용하는 지혜가 많아지면 새는 하늘에서 어지럽혀지고, 낚시바늘, 미끼, 통발을 만드는 지혜가 많아지면 물고기는 물속에서 혼란을 일으키며, 울타리, 올가미를 마련하는 지혜가 많아지면 짐승은 진펄에서 어지러워진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여서 지혜, 속임수, 옳고그름의 시비, 흑백논리에 파묻히면서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어 놓았다.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논리로서 자신들의 종교와 사상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진정한 종교와 진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종교다툼의 兆朕(조짐)을 우려한다. 그러나 종교의 세계는 정치적이고, 단세포적인 세계관이나 사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세계이다.

오래 전에 임권택 감독이 비구니(比丘尼)라는 불교영화를 촬영할 때에 불교계는 불교의 치부를 드러내고 악의적으로 불교를 비판한다고 영화촬영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를 발표했을 때 이것이 불교비판 소설이라고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영화화한 ‘만다라’ 영화를 보고 불교의 심오한 세계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종교는 사회적 비판이나 충고를 받아들이는 河海(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와 불교는 근본이 같은 뿌리의 종교이다.
元曉는 三國遺事 蛇福不言條에서 신라 진평왕때의 異人 蛇福(사복)을 위해 그 어머니를 장사지내 주었다. 원효는 사복 어머니의 棺 앞에서 “태어나지 마라.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마라. 태어나는 것이 괴롭다” 라고 하였다.

사복(蛇福)이 너무 길다고 하자 “죽고 사는 것이 괴롭다” 라고 하였다.
이것도 길다고 하자 “괴롭다” 라고 말한다.
사복은 어떠한 종교적 교설이나 이론도 어머니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주장이나 이론이 인간의 근원적 괴로움을 消遣(해결)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의 直截(직절)한 표현이다.
元曉는 華嚴經을 敷衍(부연) 하면서  모든 종교와 사상 철학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난다고  갈파(喝破)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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