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大冶鑄金  金踊躍曰             
금대야주금  금용약왈
我且必爲 鏌鎁  大冶必以爲不祥之金  
아차필위막야  대야필이위불상지금
今一以天地爲大 鑪    以造花爲大冶  惡乎往而不可哉 
금일이천지위대노     이조화위대야 오호왕이불가재

지금 용광로에 들어가려는 쇳덩어리가 나는 鏌鎁 (막야)라는 名劍(명검)이 되겠다고 하면 대장장이는 괴이한 쇳덩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세상을 커다란 용광로로 보고 인간을 쇳덩어리로 본다면, 사람이 사람으로만 있겠다고 한다면 저 용광로(造化者,조화자)는 인간을 정신나간 쇳덩어리 정도로 여길것이다.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은 출구(出口,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處했을때 敢行한다. 그러나 禪家의 看話禪에서는 의도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간다.

金聖東의 小說 曼陀羅에서는 ‘병속의 새’ 라는 話頭가 있는데 병도 깨트리지 않고 새도 죽이지 않고 병속에서 새를 무사히 꺼낼 수 있겠는가? 라는 화두이다.

‘병속의 새’ 라는 화두는 인생을 살면서 삶의 근원적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마치 기찻길의 평행선처럼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해답이 없는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삶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해답이 없는 문제를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話頭參究(화두참구)의 要諦(요체)는 고도의 정신적 막다른 골목이다. 삶과 죽음 그 밖의 牛?馬勃(번뇌망상)이 끼어들 틈이 없는 철두철미하게 막다른 골목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세상을 버리는 것이 자살(窮則死)이면  막다른 골목에서 세상을 살리는 것이 깨달음(窮則通)이다.
이것이 해답이 없는 인생에서 용광로(鎔鑛爐)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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