請言其畛 有左有右 有倫有義 有分有辯 
청언기진 유자유우 유윤유의 유분유변

故分也者 有不分也 辯也者 有不辯也   
고분야자 유불분야 변야자 유불변야

聖人懷之  衆人辯之以相示也             
성인회지  중인변지이상시야

事物에는 왼쪽이 있고 오른쪽이 있다. 말에는 큰 줄거리가 있고 詳細(상세)함이 있다. 생각에는 分析함과 구별(區別)이 있다.

그러나 왼쪽에는 오른쪽이 포함되었으며 큰 줄거리에는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세상을 分析하지만 분석하기 전의 세계가 있고 사물을 區別(구별)하지만 區別되지 않는 것이 있다.

聖人은 道(진리)를 가슴에 품지만 凡人(일반인)은 道(진리)를 구분하여 남에게 내보인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수많은 생각들이 모여서 한 시대의 종교, 철학, 사상의 흐름과 주류를 형성하는 것인데 史家들이 논하는 한 시대의  종교, 철학, 사상적 논변(論辯)은 복잡하고 유기적인 것이어서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 맥락(脈絡), 상호 영향을 끼치는 관계, 當時代의 생각들의 흐름, 대중과 민중의 삶의 흐름 등이 종합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피부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철학이요, 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사상이요, 뼈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종교이다.

精緻한 철학과 遠大한 사상이 만나 꽃을 피운 것이 종교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종교, 철학, 사상이 정치적인 논리로써, 세상의 주류를 형성하는 旣得權의 私有(사유)로써 이용되어 왔다.

우스갯소리로 지옥에 온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사람은 지식인이요, 한사람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無學)인 사람인데 閻羅大王(염라대왕)은 지식인에게 苛酷(가혹)하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이치를 恣意的(자기마음대로)으로 해석하여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욕심으로 가득 찬 泥田鬪狗의 세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S Rajneesh의 寓話(우화)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고치는데 아버지가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세상은 믿을 수가 없단다. 종교, 철학, 사상가는 언제라도 사다리를 치워서 꼭꼭 감추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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