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聞在宥天下 不聞治天下也 天下不淫其性 不遷其德 有治天下者哉
문재유천하 불문치천하야 천하불음기성 불천기덕 유치천하자재

昔堯之治天下也 人樂其性 是不恬也 桀之治天下也 人苦其性 是不愉也
석요지치천하야 인낙기성 시불염야 걸지치천하야 인고기성 시불유야

非德也而可長久者 天下无之
비덕야이가장구자 천하무지

天下를 있는 그대로 放任해 둔다는 말은 들었지만 天下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堯임금이 天下를 기쁘게 하였지만 결코 편안한 일이 되지 못하였다. 桀王이 세상 사람들을 지치게 하였는데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 못 되었다. 편안치 않고 즐겁지 못한 일은 德이 아니다.

德이 아니면서 오래가는 것은 세상에 없다. 卍海  한용운 ‘님의 침묵’의 님은 조국의 독립이라고 말을 하는데, 여기에서 ‘님’이라고 하는 것은  泥田鬪狗의 세상과 涅槃寂靜의 세계, 즉 삶과 죽음 그리고 有情 無情의 森羅萬象을 말하는 것이며 조국의 독립은 ‘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용운은 禪機에 대해서 말한다.
臨濟의 喝(스승이 제자를 가르쳐 진리에 이르도록 하게하는 고함소리)과 德山의 棒(스승이 제자를 가르쳐 진리에 이르도록 몽둥이로 치는 것)은 한 마디의 무심한 소리에 지나지 못하고 한 가지의 무정한 썩은 나뭇가지에 지나지 못한다.

思量卜度(사량복탁)의 知解가 없는 무심한 소리이기에 어느 法(道)에 통하지 않음이 없고 親疎愛憎이 없는 離相의 몽둥이인 고로 맞지 아니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喝과 棒에 知解와 着相이 있으면 그것이 이른바 영리한 痴喝이요, 총명한 盲棒이다. 栗谷 李珥는 18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佛門에 入門한다.

산속에서 수행하는 한 老僧에게 色是空空是色이 鳶飛魚躍(새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논다)의 道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頭頭物物, 森羅萬象이 모두 眞諦(진리의 세계) 라는 말인데  한용운이 말하는 ‘님’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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