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泰淸問乎无窮曰 子知道乎 吾不知 无爲曰      
태청문호무궁왈 자지도호 오부지 무위왈

子之知道 无始曰 不知深矣 知之淺矣        
자지지도 무시왈 부지심의 지지천의

弗知內矣 知之外矣 予能有无矣 而未能无无也
불지내의 지지외의 여능유무의 이미능무무야

泰淸이 无窮에게 물었다. 당신은 道를 알고 있소?   
나는 모르오.
다시 无爲에게 물었다.  
당신은 道를 알고 있소?  
나는 알고 있소.

无始가 이 말을 듣고 말한다.
모르는 쪽이 깊고 아는 쪽이 얕소. 모른다 함은 骨髓요, 안다고 하는 것은 피부요. 왜냐하면 道는 물을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것이요. 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모른다고 하는 것도 던져 버려야 진정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요.

모든 學問을 하는 데에 스승이 필요하다. 그러나 본래 人間에게는 無師智(스승이 필요 없는 지혜)가 갖추어져 있다. <衆生本有無師智 自然智 衆生承自然智 得成于佛 , 神會禪師語錄 >

楞伽經에 말한다.
진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法(진리)을 說하는 것이요, 눈썹만 움직여도 설법이요,  웃기만 하여도 설법이요, 하품만 해도 설법이요,  기침만 해도 설법이다.

대학원 수업(碩士, 博士 과정)은 論文위주로 수업을 하는데 논문 한편을 쓰기 위하여 철저하게 혼자 凝神觀照(정신을 응집시켜 관조함) 沈思冥想(깊고 아득히 생각함)을 해야 한다.

모든 학문이 求道의 길이라면 중·고등학생 때의 교육과정도 無師智의 前단계인 論文위주로 교육을 해야 한다.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교육체계를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孟子의 性善說, 荀子의 性惡說과 같이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스승이 필요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唐의 王維가 神會에게 묻는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높은 학문의 세계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
만약 훌륭한 스승이 있다고 생각하면 畢竟 학문을 완성할 수 없다. 그대는 妄念을 버려라. <若爲修道得解脫 衆生本自心淨 若更欲起心有修 不可得解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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