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묵(공주시 문화관광과장) -

군악대 축제 중 스코틀랜드 군악대가 입장하고 있다.

낯선 타국도 단 며칠이면 정이 드나 보다. 떠나기가 싫어진 것을 보면. 집을 떠나온 지 불과 일주일 밖에 안됐지만 사무실과 집은 새까맣게 잃어버리고 머리통은 온통 축제로만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부질없는 정을 용서하지 못했다.

이제 KBS-TV 일행과 함께 이태리의 시에나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영국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잠시 피곤을 달래줄 겨를도 없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자마자 추위에 떨어야 했다. 8월 18일이면 늦더위로 기승을 부리는 한국이고 이태리일 터이지만 영국은 이미 가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반팔 티셔츠로 무장한 우리 일행은 두꺼운 잠바시즌에 접어든 영국을 너무 몰랐던 탓이었다. 그렇지만 에딘버러는 도시 전체가 축제열기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역사는 물릴 수 없는 생명산업

에딘버러는 런던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다. 부산에서 신의주 만큼이나 걸릴 시간이다. 회색의 중세도시 에딘버러.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같다. 도시 전체가 옛 건물로 꽉 들어차 있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고층 아파트나 대형 건물도 볼 수가 없다. 눈에 제일 먼저 띄는 것은 옛 성당과 에딘버러성(城)이다.

도심의 한 가운데 언덕 위에 서있는 에딘버러성은 옛날 궁전인 동시에 적들의 침입에 대비한 요새로 7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거친 돌을 그대로 쌓아올린 성벽과 성내 건물들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12세기에 건축된 예배당, 왕가의 보물창고, 감방들도 성곽 안에서 옛 병사들의 삼엄한 경비와 함께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바다를 향한 대포들은 금방이라도 불을 댕길 듯한 분위기다.

에딘버러성에서 내려오면 ‘로얄마일’ 이라는 1.6㎞ 남짓한 돌길이 나온다. 바로 에딘버러가 자랑하는 로얄마일 거리다. 양쪽으로 늘어선 4~5층의 옛 건물에 카페, 스코틀랜드의 자랑인 위스키 점, 체크무늬 옷 상점, 전통음식점들로 채워져 있다. 창문의 규격과 모양, 건물의 색깔, 간판들이 어쩌면 저렇게 규격품일까 의아하기만 하다. 만약 우리처럼 흰색이나 빨강, 노랑 등 다양한 칼라를 좋아하거나 아스콘, 레미콘 타설 타령했다가는 한방 얻어맞을 형국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로얄마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 세인트자일즈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으로 1120년에 지었다고 쓰여 있다. 종교개혁가 존 낙스가 사제를 지내 유명해진 곳으로 조금 더 밑으로 내려오면 존낙스가 살던 집도 있다. 스코틀랜드가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바꾸게 된 것도 존 낙스 때문이라고 한다.

프린지 축제장면

오늘날 한국개신교의 최대 종파인 장로교의 뿌리가 되는 곳이기고 하다. 로얄마일의 가장 끝 부분에 홀리루드 궁전도 있었다. 원래 12세기에 지어 졌으나 몇 차례 불타 없어지고 17세기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영국 여왕이 지금도 이곳 방문 때 즐겨 쓰는 곳이라고 한다. 오랜 집일 수록 값이 나간다는 도시다.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모델인 살인마 브로디 목사가 살던 집도 있고 1700년대 지은 국회의사당, 스코틀랜드 박물관, 스코틀랜드 도서관도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며 결코 뒤질 수 없는 옛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역사 만으로는 안 된다, 축제를 만들어라”

가는 곳마다 아스팔트보다는 돌길이 많고, 가드레일 보다는 돌담으로 디자인된 도시, 백파이프, 위스키, 귀족들의 성과 왕조의 유산이 가득한 곳으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수백 년, 수천 년을 훌쩍 넘어 평화롭기 그지없는 지금,  이 도시 속은 축제가 한창이다.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에딘버러 축제가 고풍스러운 도시 곳곳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국악 대축제, 프린지 축제, 책 축제, 영화 축제, 재즈 축제, 연극 축제가 그것이다. 48만 명의 인구지만 연간 1,2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으며 벌어들이는 돈 만도 27조 원에 달하고 4천여 명의 고용창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축제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프린지 축제장면

흔히들 에딘버러 축제하면 미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축제나 프린지(Fringe)축제를 말한다.

에딘버러 축제는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60여 년이 지난 지금 군악축제와 더불어 길거리 축제가 ‘축제속의 축제'로 진가를 발휘하면서 도시 전체를 축제에 휩싸이게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호텔과 민박을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입장권도 사전에 예약하지 못하면 되돌아 가야할 정도다.

축제인파가 절반만 영국인이고 미국인이 12%, 유럽인이 30%, 나머지는 동양인과 아프리카인들의 수치인데다가 대부분이 2일 이상을 체류하는 관광객들이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식당, 기념품점, 호텔과 거리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인파와 손님으로 넘쳐 난다. 그저 지역사람이나 가까운 인근 사람들로 대부분을 채우며 단순히 성공한 축제라고 평가하며 흥청거리며 소란 떠는 우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의 질서 통제도 엄격했다. 노점상은 있을 수 없고  불법주차나 거리 미관을 저해하는 물건들은 찾아 볼 수도 없는 것은 선진국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길거리서든 공연장에서든 간에 우리 마음대로 촬영을 할 수 없었던 점이이었다.

주관 방송사인 영국의 BBC 외에는 어떤 촬영도 허가를 받아야 되는 형편이었는데 현지인의 이야기로는 ‘축제는 상업적이고 저작권 유출’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간신히 허가를 받아내어 촬영도 하고 에딘버러 시장(市長)도 인터뷰에 응했고 조직위원장도 만나 축제를 배웠지만 그것은 한국 전체에 에딘버러축제를 널리 좋게 홍보하갰다는 조건이지 축제를 베껴가는 것은 안 된다는 조건하에 취재가 허락되었던 것이다.

상점 앞에는 연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군악 대축제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

에딘버러 군악 대축제는 매년 8월 첫째 금요일에 시작하여 토요일 까지 23일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군악대와 여러 종류의 민속악기들을 연주하며 참여한다. 올해는 영국을 비롯해서 스위스, 칠레, 뉴질랜드, 중국이 참여했고 우리나라 육군 취타대도 2003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하루 3만 원에서 7만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하고 9천석의 좌석은 금방 꽉 차 버렸다. 밤 9시 정각에 개막 팡파르가 울리면 성문 안쪽에서 군악대들이 입장한다. 털모자에 화려한 견장과 휘장을 하고 악기와 드럼을 치며 대열을 맞추어 들어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국악 축제의 핵심은 스코틀랜드 보병부대다. 칼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절도있는 행진은 에딘버러성을 비추는 은은한 불빛과의 조화가 절묘했다. ‘칼트’는 이곳 사람들의 전통 옷인 주름치마를 말한다.

로얄 마일 거리 풍경
에딘버러 군악 대축제의 정식 명칭은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Edinburgh Military Tattoo)’라고 한다. ‘타투’라는 말의 어원은 옛날 선술집 주인에게 밤이 깊었으니 집에 들어가라는 신호를 음악연주로 보내는데서 유래됐다. 자기네 군악에다가 세계 군악을 연결시킨 것이 포인트라 하겠다.

이 군악 축제를 보러 오는 관중은 매년 21만 7천 명이나 되고 입장료 수입만도 9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세계에서 매년 1억 명 이상의 시청자가 BBC를 통해 시청한다고 하니 축제가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가 엄청날 수 밖에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