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묵(공주시 문화관광과장)

‘점프’ 공연 성공, 우리 것 세계화 접목해야

에딘버러도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도 이젠 어색하지 않게 됐다. 어지간한 골목은 어디든 혼자서도 찾아다닐 수가 되었으니까.
민박집 승범이네 집에서만 하던 영국 사람들의 궁금한 이야기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가 보다. 매일 승범이네 집이 한국 사람들로 6개 방이 모두 들어차 있는 것도 이국적인 것을 더 못 느끼게 하는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들은 친구가 될 수 있어도 식생활만큼은 그렇지가 못했다. 고추장, 김치가 그리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한식, 양식 섞인 아침밥 먹고 나오면 밤늦도록 축제 판에서 한껏 웃고 취재 카메라에 끌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꼬르륵 소리에 이것저것 가려가며 먹는 음식타령은 있을 수 없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에딘버러도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도 이젠 어색하지 않게 됐다. 어지간한 골목은 어디든 혼자서도 찾아다닐 수가 되었으니까.
민박집 승범이네 집에서만 하던 영국 사람들의 궁금한 이야기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가 보다. 매일 승범이네 집이 한국 사람들로 6개 방이 모두 들어차 있는 것도 이국적인 것을 더 못 느끼게 하는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들은 친구가 될 수 있어도 식생활만큼은 그렇지가 못했다. 고추장, 김치가 그리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한식, 양식 섞인 아침밥 먹고 나오면 밤늦도록 축제 판에서 한껏 웃고 취재 카메라에 끌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꼬르륵 소리에 이것저것 가려가며 먹는 음식타령은 있을 수 없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프린지는 지구상 가장 큰 축제
‘난타’ 축제 참가,  국제무대 성공

‘프린지축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예술축제다.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프린지(Fringe)란 본래  ‘가장자리' 또는 '주변'이라는 뜻이다.

사실은 에딘버러 중심 도로에서 벌어지는 축제지만 한 기자가 공연 기사를 쓰면서 '페스티벌의 변두리에서'라는 말을 쓴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학교, 교회, 공연장, 광장, 거리가 온통 공연들로 가득 메운 채 관광객들을 흠뻑 빠지게 하는데 무려 하루 동안 261개소에서 1000여 개 이상의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클래식, 댄스, 무용, 묘기, 마술, 전통 악기 연주, 인간 로버트, 연극 등이 주류를 이룬다.

프린지 축제의 특징은 누가나 참가 할 수 있고 축제 참가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주최 측에서는 공연단을 초청하거나 사전에 선정하지도 않는다. 축제에 참가하기를 희망하는 공연단은 스스로 공연할 장소를 물색하고 스폰서를 구하고 비용을 마련하고 스스로 광고를 해야 한다. 적자가 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공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수준 높은 예술작품 만을 공연하는 에딘버러 군악 대축제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프린지 축제에서 좋은 평판을 받으면 세계 시장에서 예술성과 상품을 인정받게 되므로 참가팀들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느라 안간힘을 쓰게 되는 것이다. 관객 만으로도 인기가 좋은 곳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난타(Cooking)’가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된 것도 1999년 이곳 프린지 축제에 참가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해외무대로 나선 ‘점프'
공연극장 앞, 관객 장사진

세계 각국의 예술 감독과 기획자들이 몰려드는 에딘버러는 ‘아트 마켓'성격이 크다. 국내에서 에딘버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난타'가 프린지축제에 참가하여 성공한 이후다. 제2, 제3의 난타를 꿈꾸며 에딘버러에 서려는 공연단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점프'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점프’는 태껸의 달인 할아버지, 공처가형 태권도 고수인 아버지, 터프한 격파 왕 어머니, 허구한 날 술과 연애하기 바쁜 취권의 대가 노총각 삼촌, 그리고 발레형 무술의 딸 등 집안 전체의 무술만도 117단의 집안에 멍청한 도둑이 숨어들면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도둑과 이를 막고 나선 무술 가족의 한판 승부가 펼쳐 내는 연극이다.

‘점프’는 대사가 없다. 연극을 이끌어 가는 힘이 언어라면 점프의 또 다른 엔진은 코믹 그리고 음악과 춤의 무술 동작이다. 웃음거리와 스릴있는 격투신은 통쾌함이 넘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게 한다. 영국 아이들도 어른들도 웃느라 정신없을 정도다. 780석의 어셈브리 극장은 연일 여러 연극을 공연하지만 우리나라 ‘점프??처럼 공연시간 한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공연은 없었다.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화도 산업이라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울극단의 춘향전 공연은 달랐다. 혼신을 다하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또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한 길거리의 사물놀이패들의 열정도 있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코 우리 것만 우겨대서는 안되겠다는 문화의 벽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외국문화와 접목한 ‘퓨전’이라는 용어가 생겼나 보다.

에딘버러 축제성공의 비결
역사·문화 자산 활용 결과

에딘버러가 세계 최고의 축제도시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자신들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그들도 옛 도시가 자칫 빈 공간이 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이 도심을 떠나지 않게 하고 사람들을 끌어 들일 수 있게 한 전략이 바로 에딘버러 축제이고 그것을 상업화로 연결한 것이 축제산업이었다.

에딘버러는 1월 달만 제외하고는 연중 축제가 그치질 않는 곳이다. 1월 달 매출액이 평소의 10분의 1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것이 축제효과라고 밖에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천 이백만 명의 관광객이 풀어 놓는 돈은 48만 명의 에딘버러 사람들의 주 소득원이다. 공장도 없고 농업도 다른 관광지도 없는 에딘버러. 도시자체가 상품이고 거리를 채우는 것은 에딘버러 사람들이 아닌 멀리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백제문화제’ 세계화로
‘관광 공주’ 명성 되찾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명색이 공주시 문화관광을 책임지고 있는 필자로서는 축제 하나 만으로 에딘버러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들을 부러워만 해서야 이번 여행의 보람이 없지 않은가.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힘이 들고 때로는 가족이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세계 속의 축제’를 보고 배우고자 나선 여정이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곳의 축제를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백제의 고도인 우리 공주도 명실공히 ‘문화관광의 도시, 공주’의 명성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과 다짐 만이 온통 머릿 속에 꽉 차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각도로 방안을 연구하고 노력할 것이지만 한편 시와 기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시민들의 성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글을 통해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

우리가 터를 닦고 살아 온 공주는 그동안 선조들에게서 받은 훌륭한 유산 덕을 많이 받아 왔다.  이제는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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