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동차로 이탈리아 시에나로 가는 길이다.
인천에서 로마를 거쳐 피렌체까지 13시간을 날아와 여장을 풀어 놓은 뒤, KBS 취재팀 3명과 함께 세계 이름난 축제를 찾아 가고 있다.
피렌체에서 시에나로 가는 길은 한 시간 정도의 거리로 5일 동안의 여장을 피렌체에다가 푼 것은 이미 시에나는 축제 인파로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다.
‘축제’라는 말은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원천이다.
우리와 다른 언어와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본다는 일은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도 생기게 하지만 상상했던 것들을 확인하는 기대감으로 항상 설레게 한다. 더욱이 그것이 축제의 상황이어서 먼 길이지만 그 즐거움은 배가가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시에나 가는 길은 정말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산들이 거의 없거나 나지막하다. 가리는 것 없이 사방이 지평선으로 하늘과 맞닿아 멀리까지 시원하게 보이고  이따금 언덕 위로 옛 성들이 나타나고 장난감 같은 차들이 요란을 떨기 때문이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중세의 풍경

시에나를 설명하는 여행책자에 빠지지 않는 글이 있다면 바로 아름다운 언덕과 중세의 건물들이다. 승용차를 타고 가는 동안 구릉지 그 언덕들이 바로 이런 것들을 두고 말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는 말 할 것도 없고 시에나는 처음인데 역시 축제보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언덕위의 성 같은 도시, 영화나 그림에서 보았던 중세의 풍경, 그대로 였다.
회색빛 도시, 언덕 위의 옛 집, 뾰쪽 뾰쪽 솟아난 성당, 뽑아 올린 건물 사이로 좁게 늘어뜨린 골목길, 600~ 700년 전에 형성된 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페며 찻집, 식당, 선물 가게 집 들은 골목의 주인이지만 겉으로는 너무 태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출된 간판도 없고 거리로 튀어나온 물건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현란한 네온싸인 같은 것은 결코 낄 수 없는 먼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연일 꽉꽉 들어차 부산하기만 한 이곳이다. 우리처럼 요란을 떨어가며 세트장을 지을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가 촬영장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더욱 눈을 휘둥그렇게 한 것은 공주의 구도심 정도 넓이이기는 하지만 5층 규모로 이어진 건물 속에서 5만여 명의 인구가 산다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허물어 버리고 새로 지을 집들이 즐비한데도 말이다. 눈을 씻고 봐도 아파트나 고층빌딩이 있을 법한 곳은 없었다. 

돌덩이 그자체가 시에나 역사지만 공주역사는...

오래된 집일 수록 값이 나가고 대우받는 건물이며 거리의 바닥은 물론이고 빈 공간을 이어주는 가드레일 까지도 육중하고 정교하게 쌓아 그을린 돌덩어리가 바로 시에나의 역사였다.
1,500년 백제역사 속에서도 정체불명의 잡동산의 거리며 불쑥 불쑥 튀어나온 간판과 전봇대로 뒤덮혀 부셨다 지었다 새 건물만을 고집하는 우리 공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질 않는데 있었다. 억지로 만들어 조성하려는 우리의 관광지와 달리 이곳은 오랜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들의 관광지의 차이다. 역사를 자랑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곧 ‘자원’이고 ‘돈’이 되는 것이다. 이곳 시에나도 이따금 현대식 건물을 짓겠다며 시와 충돌하는 사례도 더러는 있다고 하지만 고건축물 만이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식 건축물만을 선호할 밖에 없다고 한다. 피렌체가 역사의 요람이라면 중세예술의 결정체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시에나 라는 게 이곳 교포 가이드의 말이고 보면 시에나는 유명도시인 로마나 피렌체의 유명세에 다소 가려져 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직은 뜨거운 태양이 직선으로 내리 쏘는 8월 중순이지만 좁은 건물사이로 걸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시에나 축제는 캄포광자에서 시작되고

시에나 축제는 캄포광장에서 시작된다. 도시로 향하는 모든 길은 이 광장에서 나가고 다시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만여 평 쯤 되어 보이는 이 광장은 웅장한 시청과 성당건물을 중심으로 대리석과 붉은 벽돌의 중세 건축물로 둘러 싸여 광장이라기보다는 너무나 멋진 예술품이었다. 축제를 하루 앞두고서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인파들로 가득차 있는 게 아무래도 일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너무 멋진 광경에 하늘로 솟아오른 종탑과 市청사를 배경으로 사진기 들여 댄 순간 벌떡 일어나는 화가가 자리를 비켜주는 배려가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곧 바로 무너지게 한다.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이면 이곳에서 ‘팔리오 축제’가 열린다. 1,2차 세계대전 중에도 열린 천년 역사를 갖고 있는 승마경주가 바로 그것인데 안장 없이 옛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타 승마경주와 다른 모습이라서 더욱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로마제국시대에 원형경기장을 돌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유태인 벤허와 로마인 멧살라의 마차 결투장면을 연상케 했다. 원형경기장과 주변 건물의 창문으로 내다보는 사람과 꽉 메운 군중들이 외치는 함성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을 듯 한 광경이었다.
팔리오에 참가하는 팀은 용, 늑대, 거북이, 기린 등 자신들을 상징하는 동. 식물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지역별로 17개 팀이 겨루는 3분도 채 안 되는 말 경주지만 준비하는 광경이 바로 축제의 진미가 아닐 수 없었다. 

 옛 건물에 넋을 잃고  축제에 취하고

축제 본부의 소개를 받아 거북이 팀을 따라가 보았다. 골목 따라 내걸린 깃발이며 여기저기 길거리를 오가는 그룹별 마을노래가 이어지고 고향을 찾아 처자식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서 오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들뜬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당에서의 출전 경마 축복식,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한 2천 여 명도 넘을 팀원들이 그들만의 머후라나 옷을 걸치고 포도주를 나누며 승리를 다지는 만찬의 자리였지만 고기를 굽고 음식을 나르는 젊은이들의 모습만 봐도 정말 자부심과 결속력은 대단하기만 했다.
이러한 승리를 다지는 전야제의 자리는 거북이 팀만이 아니었다. 골목하다 전의를 다지는 소리는 넘쳐나고 새벽 먼동이 틀 때 까지도 골목 상점들은 관광인파로 북적거려 문을 닫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돈을 퍼붓고도 관광객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온 종일 피로감으로 저절로 눈이 감겨오는 것도 잊고 KBS 취재팀과 함께 중세의 한 복판에 주저앉아 덩달아 열기에 흠뻑 취하는 것도 그냥 스칠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이자 추억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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