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숙희(금강청소년문화진흥원 사무국장)

예전에 영문학 공부를 할 때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 초등학교 시절 코를 박고 읽었던 공상과학소설의 작가인 조지 웰즈의 단편소설 ‘The Pearl of Love’를 읽은 적이 있다.

은유적인 우화소설이었는데, 읽는 내내,  읽고 난 후, 또 지금처럼 간간이 그 이미지가 떠오르곤 하는 소설이다.

예쁜 공주와 멋진 왕자가 너무너무 사랑하다가, 공주가 쐐기풀 가시에 찔렸던가? 어쨌던가? 뭔가 굉장히 사소한 일로 죽게 된다. 슬픔에 빠져 있던 왕자는 죽은 공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에 넣어 장사지내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금으로 문양을 새겨 넣은 귀하고 향기로운 나무로 관을 짠다. 그 다음 그 관을 보관할 장소를 물색한다. 공주의 관을 안치할 장소를 찾는 작업은 처음에는 소규모로 시작하지만 점점 초인적인 크기와 웅장함으로 변해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왕자는 그 거대한 건축물이 억지로 애써서 만든 것 같다는 것을 깨닫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화려하고 정교하던 아름다움을 추구하다가 자연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금은보석으로 빛나던 공주의 관을 수수한 석관으로 바꾼다.

게다가 그 건축물의 원래 목적이었던, 공주의 관을 보관, 혹은 전시하기 위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그 건축물에 관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Take that thing away." he said. 이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왕자가 공주의 관을 치워버리라고 할 때, 영국문학 교수님은 ‘예술의 정수’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야 ‘예술의 정수’란 ‘예술’ 그 자체의 순수성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웰즈의 그 작품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순수성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일’보다는 ‘사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발견한 곳이 4년째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 곳 금강청소년문화진흥원이다. 비영리법인 청소년단체는 학교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욕구를 분석해서 그 욕구를 보다 건전한 방법으로 충족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주는 곳이다.

따라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기 마련이다. 이 분들은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자 하는 순수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는 분들이다.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고 싶다는 원대한 소망이나 포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매력인데, 거기에다 순수한 열정까지 더해지면 아마도 그것은 ‘마력’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그 원대함이나 순수한 열정에 ‘사람’이 빠져있다면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복지라는 말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듣고 또 말하곤 하다 보니 정작 인류의 복지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빠져있기 십상이다.

그런데 항상 ‘사람’을 최우선가치로 삼는 사람들이 이곳에는 참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함께 하는 일마다 즐거울 수밖에 없다. 매년 해오던 ‘단오제’나 ‘중양절’, ‘금강탐사’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 신중한 논의 끝에 ‘찾아가는 문화존’을 새롭게 시도해보는 일......, 이 모두가 흥겨운 한판 놀이마당이 된다.

‘리더십 캠프’나 ‘선비교실’, ‘자기성장 프로그램’들처럼 청소년들 하나하나가 리더로서의 소양을 갖추도록 기획된 프로그램들조차 알찬 내용과 원활한 진행은 당연하고, 활동을 함께 하는 어른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 그 자체가 교육의 장이 된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면서, 그 행동이 돌고 돌아서 첫 번째 사람에게 또다시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연쇄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 분들을 감히‘아름다운 사람들’이라 부른다. 굳이 좋은 일을 한다고 내세우지도 않을뿐더러, 궂은일 마다않고 바쁜 시간 쪼개고 쪼개서 달려와 주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올해도 공주 청소년들과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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