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숙희 (금강 청소년문화진흥원 사무국장)

청소년들은 대개 스스로 자발적으로 상담을 받으러오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엄마 손에 이끌려서, 혹은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또 법원의 명령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이렇게 떠밀려서 상담실을 찾다보니 처음 만날 때는 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고 입은 한일자로 꾹 다물어져 있기 마련이다.

상담자가 몇 마디 질문하면 마지못해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곤 또 묵묵부답 인채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다.

보호소년의 경우에는 법원으로부터 사건경위 등의 기록을 받게 된다. 라면 2개를 훔친 아이, 면허 없이 오토바이를 운전한 아이, 친구들과 함께 패싸움을 한 아이, 남의 오토바이를 운전하려고 시동을 걸다가 들킨 아이, 남의 집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가서 장롱을 열다가 들킨 아이, 간혹은 남의 가게에 들어가서 금고를 열고 금품을 훔치다 들킨 아이도 있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가정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이혼하여 연로하신 할머니와 살고 있는 아이, 고모 혹은 이모 댁에서 살고 있는 아이, 투병 중인 홀어머니와 혹은 홀아버지와 사는 아이, 물론 경제형편은 모두 몹시 어려운 처지다. 이 아이들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중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생리적 욕구, 혹은 안전 욕구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선 당장 먹고, 입고, 자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그래서 많아야 열일곱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들이 택배 아르바이트, 공사장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당장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을 하던 아이들이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상담자의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전과자니까요, 전과자라서......”

낙인이 찍혀버린 이 아이들에게 얄팍하게 이런저런 상담이론들을 적용하면서 또 이런저런 상담프로그램들을 접목시키면서 이 아이들을 변화시켜보겠다고 나름대로 애를 쓰면 쓸수록 상담목표와는 점점 더 어긋나기만 했다.

상담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고민하던 중 떠오른 이야기 한 토막.

담배를 즐겨 피우는 신부 A, B가 있었다. 두 신부는 담배 피우기를 무척이나 즐겨서, 기도를 하면서도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주교 몰래 담배를 피우기는 싫었다. 그래서 두 신부는 주교에게 기도 중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허락을 받기로 했다. A신부가 주교에게 허락을 구했다.

“주교님, 기도하는 동안 담배를 피워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A신부는 허락을 받지 못했고 기도하는 동안 담배를 참아야 했다. 그런데 B신부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 기도하면서 담배를 피우게 됐다.

“주교님, 제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기도를 해도 되겠습니까?”

이 한 마디가 바로 B신부가 주교에게 허락을 받을 수 있게 한 질문이었다. 

그냥 이 아이들을 품어주자, 그냥 이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속을 풀어놓게 하자, 이 아이들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아니다, 근사한 상담프로그램들을 포기하고 나자 아이들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난달에 6개월의 상담기간이 종료된 아이가 있다. “이제 공식적인 상담 기간은 끝났다”라고 했더니, 이 아이가 계속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한다.

학교생활도 잘 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과제도 성실히 잘해왔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자, 그러면 자원봉사를 하고 싶단다. 자원봉사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는 동안 이 아이의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바뀐 것이다.

상담자가 한 것이라곤 생활과제 해결, 인간적 성장 등 그럴듯한 단어들을 내려놓은 것뿐이다. 그냥 마음을 터놓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

넬슨 만델라의 취임 연설문 중에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신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 안에 숨어있던 보물을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이는 아이들, ‘노는 아이’라는 낙인을 서서히 지워가며 ‘희망’이라는 반짝이는 별을 달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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