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붉은 장미의 하례를 받으며 아침마다 詩經을 들으러 간다.

지난달에는 진달래의 인사를 받으며 莊子를 배우러 다녔고, 지지난 달에는 목련의 환호를 받으며 아침햇살속의 92계단을 올랐다.

공주는 참으로 문화도시이다. 곳곳에서 漢학자의 사서오경이 펼쳐진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

몇 십 년을 두고 매일 경전반이 열리는 유림회관, 일주일에 하루 기초한문과 경전을 공부하는 공주도서관, 또 공주대 평생교육원에서 모 교수님의 아침 한 시간씩의 경전강의! 그런데 그 심오한 강의가 거의 무료로 이루어진다는데 상당한 매력이 있다. 과연 선비의 도시답다.

오늘도 왕릉과 공산성 그리고 석장리 유적지마다 아이들로 북적인다. 두어 달간 대단위의 수학여행단이 다녀간 후, 아직 시행되지 못한 뒤늦은 소풍이 꼬리를 문다.

요즘은 각종 단체에서 역사문화에 해박한 강사를 양성하여 아이들을 이끌고 온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유구한 백제역사에 대한 열정을 쏟아놓는다. 중등은 중등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모두 열심히 공부해 온 것을 확인하느라 법석이다.

나의 일이 유물유적에 대한 해설인지라 때때로 청소년 단체에서 가외의 해설요청이 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싶으면 가능한 시간을 할애한다. 물론 흔쾌한 자원봉사다. 그런데 유물유적에 대한 아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우리의 유물유적의 말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단다. 왜일까...

지금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자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신문에서조차 많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일반대중은 한자를 더욱 보기 어렵게 되었다. 자주 보지 않으니 가끔 보는 한자가 더욱 낯설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 우리의 말은 거의가 한자말이다.

그런데도 한자보기가 별보기이니 더욱 어렵다. 나도 여러 선생님에게서 한자를 공부한지 십년이나 되었지만, 문장은커녕 아직도 낱글자조차 생소한 것이 왜 이리 많은지.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탄식하기를, 요즘 아이들 가르치기가 참으로 어렵단다. 교과진도는 둘째 치더라도 흔하게 쓰이는 낱말이나, 일반적인 상식조차 잘 몰라서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수업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단다.

일전에 어느 서울대 학생이 기초적인 숫자를 한자로 쓰지 못했다는 황당한 소식이 있었다. 그래도 서울대하면 우리나라에선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학교가 아닌가. 그러나 한자교육이 선택으로 바뀐 요즘, 현대의 젊은이들이 일상이나 직장생활에서 한자를 미리 배우지 않아 많은 고생을 한다.

이 모든 것이 한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리라. 뿐만이 아니다. 한자교육과 더불어 한문교육은 더욱 심각하다. 유물유적을 떠나서 우리말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한문은 필수다. 한문은 하나의 언어임에 어렸을 때부터 늘 생활에서 젖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 거칠고 예의 없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인성교육이 저절로 될 수 있는 한문교육이 빠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인 인격이 이미 형성된 후에 한문을 접하면 이미 때는 늦다.

한자, 한문교육의 부재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자칭 우리말을 사랑한다는 일부의 의견은 한문교육이 심화되면 우리한글이 홀대받지 않을까 우려하는데 한글과 한문교육의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어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으나 어떤 분이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영어의 기본은 라틴어라 하였다. 영어의 뿌리를 찾아서 라틴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말의 기본지식을 알기 위해서 한문을 더 일찍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 공주박물관에서는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동안 주변에서 출토된 목간(木簡)을 전시해 놓았다. 이 기획전의 여러 가지 출토유물 중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반달모양의 빗이었다. 그 빗의 한자가 빗 즐(櫛)이라니 참 신기하다.

빗처럼 줄지어 늘어선 것을 즐비(櫛比)하다, 빗살무늬를 즐문토기(櫛文土器)라든지, 사람이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이할 때 겨드랑이 밑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모습을 '상쾌(爽快)하다'라고 하였고, 조심(操心)하다는 마음을 잡는다는 뜻이며, 우리말인줄 알았던 주전자(酒煎子)가 한자말이 있었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역시 유물유적은 한자로 읽어야 제 맛이다. 우리의 옛 기록이 한글로 쓴 것도 아니고, 영어로 된 것은 더욱 아니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표현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 한자가 우리말 공부나 지식을 쌓는데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우리와 중국과 일본은 한자문화권이다. 한자를 익히면 역사는 물론이요,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는 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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