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가 갓난아기였을 때 일이다. 시댁에서 외출을 하면서 남편은 큰애를 가슴에 안고 나는 기저귀가방을 들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보시던 시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다. “저 쪽 길로 돌아서 가이라. 느그 이모 보시믄 흉볼 기라.” 풀어쓰자면 당신 아들이 아기를 안고 가는 모습을 이모님께서 보시게 되면 흉볼 것이라는 말씀이신데, 아들이 아기를 안지 말고 며느리가 아기를 안았으면 하는 속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눈치 빠른 이 며느리는 얼른 “제가 업고 갈게요”하고 큰아이를 받아서 업었다. 얼마 뒤에 내가 큰애를 업고 남편은 기저귀가방을 들고 친정을 찾게 되었다.

친정아버지께서 사위를 불러 한 말씀하셨다. “우리 세대는 남자가 아기를 안고 다니는 게 흉이 되는 시절이었지만, 요즘은 세대가 다르지 않느냐. 아내가 아기를 업고 다니는 것보다는 남편이 아기를 안고 다니는 게 보기에 훨씬 좋더라......”

시어머니는 아기를 안고 다닌다거나 집안일을 거든다거나 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고 친정아버지는 모름지기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고 소중하게 대해야한다는 소신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댁에는 며느리인 내가 아이를 업고 가고 친정에는 사위인 남편이 아이를 안고 가곤 했다.

양가의 분위기가 이렇게 사뭇 다른 것이 확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명절날이다. 시댁에서 명절 준비를 한 직후에 친정을 방문하게 되니까 차이점이 더 크게 부각되기 마련이다.

시댁에서는 명절 준비를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도맡아 한다. 하루 종일 밤늦은 시각까지 여자들은 음식을 마련하고 설거지를 하느라 어깨며 허리며 안 아픈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아들들은 하루 종일 TV앞을 떠나지 않고 먹을거리 주문만 해댄다.

그렇게 시댁에서 몸살을 앓고 친정에 들어서면 올케들은 사우나를 하러 가고 설거지를 하고 계시던 친정아버지가 반갑게 딸을 맞으신다. “아버지는 며느리를 너무 위한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면,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면서, “며느리가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딸들도 여태 며느리 노릇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서 그런 것이지. 며느리들도 남의 귀한 딸들 아니냐? 명절 준비하느라 힘들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해주어야지”라고 하신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사나자석이 정지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하시며 아들들은 부엌 근처에도 못 오게 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시절이 달라졌으믄 시절에 맞게 살어야제”라고 하시며 아들들도 함께 명절준비를 하도록 허용하신지 몇 해 되었다.

친정아버지는 그새 연세가 드시면서 체력도 약해지시고 이곳저곳 아픈 곳도 많으셔서 명절 설거지를 못하신지 몇 년 된다. 물론 아버지 대신 남동생들이 열심히 설거지를 하지만 말이다. 

경상도 사나이인 남편이 올해 추석을 쇠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마디 한다. “진작 도와줄 걸. 사실 TV나 보고 낮잠이나 자면서 해주는 음식만 먹고 있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함께 하니까 마음도 편하고 재미도 있더라. 진작 도와주었으면 명절이 훨씬 즐거웠을 텐데......”

먼저 도와달라고 손 내밀지 못해서 미안하다. 학생들한테는 I-message를 사용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충고하면서 정작 내 자신은 당신이 알아차려주기를 바라기만 했다.

그러면서 당신 자식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자, 남편 또한 장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두 분의 자식사랑이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두 분의 사랑방식이 다를 뿐, 두 분이 느끼는 자식이라는 테두리에는 며느리와 사위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알만큼 철이 든 걸까? 우리 부부도 이제 시어머니, 장인을 구별하지 않고 부모님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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