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잦다. 얼마 전의 일이다. 오후 6시에 모임이 있는데 오후 3시경부터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도 눈길에 고생했던 일이 떠오르면서 모임에 가야 하나,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갈등이 되었다. 일기예보는 1cm정도의 적설량이라 한다.

겨우 1cm의 적설량에 갈등하는 내 모습이 자못 낯설게 느껴진다. 문득 아주 오래 전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어린 시절을 보내던 부산은 10년에 한 번 눈이 올까말까 할 정도로 눈이 귀한 고장이었다. 중학교 첫 겨울방학 숙제 중에 자유 주제의 작문 숙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해 겨울방학에 눈이 내렸다. 적설량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개학일 전교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께서 한탄을 하셨다. 전교생 2,000여 명 대부분이 작문 주제로 눈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부산지역에서 눈은 그만큼 낯선 사건이었던 것이다.

‘눈’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왜 이렇게 움츠러들기부터 하는 걸까? 만날 대상에 대한 설렘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설렘 그 자체가 사그라져 버린 걸까?

지난 학기까지 학부생들에게 교양심리학을 가르쳤는데 새 학기에는 교육심리학을 추가해서 가르치게 되었다. 교육심리학은 학부와 석사과정, 박사과정에서 매 번 수강했던 과목이지만 그때는 배우는 입장이었고 이번에는 가르치는 입장이 되다보니 교재를 선정하는 것부터 조심스럽다.

일단 주 교재를 선정하고 참고도서들을 정하면서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대강의 개요를 그리며 강의계획서를 작성한 후, 교재를 차근차근  읽는 것으로 강의 준비는 속도를 더해갔다.

허리가 뻐근해지는 것 같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어느덧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새삼스럽게 책의 내용에 푹 빠져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주제, 비슷한 내용을 오랫동안 공부해왔으면서 처음 대하는 것처럼 흥미로울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일까?

지식의 습득이라는 관점에서 공부할 때는 그저 좀 더 많이 좀 더 깊이 알아가는 것, 그 자체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지식의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공부하다보니 좀 더 쉽고 좀 더 재미있게 알려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렇게 관점이 달라지니 같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것처럼 몰입이 되었던 것이다.

눈이 오면 그리운 사람이 그리워지는 게 아니라 고생스럽고 위험한 상황만 떠올리게 되는 것 같은 내용의 공부를 하면서도 배우는 입장일 때와 가르치는 입장이 될 때 주의집중의 차이가 나는 것, 서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현상과 관련하여 생떽쥐베리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만약에 여러분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 먼저 건장한 청년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그리고 건장한 청년들에게 튼튼한 나무를 모아오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런 다음 각자의 임무를 분담시키고 일을 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배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멋진 배를 만들려면 그에 앞서 해야 할 것이 있다. 건장한 청년들에게 광활하고 끝이 없는 대양을 바라보도록 하고, 그 대양을 향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우선이다.”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기대로 설레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좀 더 쉽게 좀 더 흥미를 갖도록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떤 사람이고 싶다’는 비전의 구체화된 목록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동경, 즉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의 모습, 열정적이고 유능한 선생의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저도 모르게 설레게 되는 것이다.

어느 시인은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라고 읊었다. 내 안의 비전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그리하여 설렘으로 가득한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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