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력정월 초하루 ‘설날’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첫 날인 정월 초하루를 ‘설날’이라고 한다. 이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개화(開化)와 함께 양력(陽曆)이 사용되면서 양력으로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고 하고 음력(陰曆)설날을 구정(舊正)으로 나뉘어 한때는 ‘민속의 날’이라는 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오랜 전통과 의미가 담긴 이 날을 명절 중에서도 가장 중히 여겨 마침내 ‘설날’로 회복되었던 것이다.

음력설, 구정(舊正)이라는 용어는 지양(止揚)하고 ‘설날’이라는 말을 지향(指向)해야 하겠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說)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섦’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轉移)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언제부터 이날을 설이라고 한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도 역법(曆法)이 생기면서 정월 초하루가 한해를 시작하는 첫 날이며, 이날은 새해의 시작이라는 데서 생활과 제도의 모든 면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에서 행해진다.

벼슬아치들은 상급자에게 하례를 드리고 자손들은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며 아랫사람들은 웃어른에게 세배를 한단. 평소에 자주 만자지 못한 분들에게 연하장르 보내고 친척, 친지, 벗들을 찾아 새해 인사를 한다.

객지에 있던 가족들이 한데 모이며, 남의 집에 맡겼거나 두었던 물건들도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날은 ‘민족의 대이동’ 이라고도 한다.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기도 하며, 새 옷을 입고 새 마음을 단장하며 즐거워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설날부터 3일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賀禮)한다.

이렇게 남이 바라는 바를 말하는 일을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설날의 대표음식은 떡국, 신선로, 약과, 다식이며, 북쪽 지방에서는 만두라고 한다. 설날의 놀이로서는 가족이 다 같이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날리기를 한다. 그 외에도 칠교놀이 고누놀이, 제기차기, 투호놀이, 팽이치기도 있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수천 년 동안 민간에서 지켜 내려와서 관습화된 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예를 들면 떡 방앗간을 섣달그믐 전 1주일 동안은 못 돌리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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