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10년이라는 세월은 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요,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 속에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하여 그 정도의 세월 속에서 큰 줄기 또는 환경이 비슷한 패턴을 두고 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의 유전자 또는 뇌리에 기억되어 그러한 옛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는 그 말이 무색하리만큼 모든 분야에서 일 년 또는 몇 달 만에도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게 지금 우리가 사는 이시대의 모습이다.

십여 년 전 우리나라 가요계에 댄스그룹 열풍이 불어 청소년 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떠오를 적 이야기이다. 70년대 80년대가 통키타와 그룹사운드가 젊은 층 대중예술의 상징이었다면 90년대에서 2000년까지는 댄스그룹과 힙합 그리고 랩이 청소년 대중 예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무렵 공주 청소년들 역시 삼삼오오 뜻 맞는 친구들끼리 카세트 레코드를 어깨에 메고 인적이 드문 곳이나 공원의 후미진 곳에서 연습을 하며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요원하지 않을 때 음성적인 곳에서 보다는 자신들의 끼와 재주로 가까운 지인들에게 당당히 보여주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제1회 공주청소년댄스페스티벌이었다.

옛날 계룡문화회관(구 공주극장)에서 대회를 개최하여 성황리에 청소년들의 한(?)풀이를 해줬지만 각 학교 학생과장과 몇몇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도 채 몇 년이 못가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교육 정책 역시 변하였으니 지금은 예술 강사 파견 또는 방과 후 학습프로그램 등 다양한 예술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십여 년 전에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술이 직업인 필자가 각 학교에 파견되어 있는 충남·북 예술 강사들의 평가위원으로서 요즘 활동하며 느낀 점은 청소년들이 예전보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예술 활동에 대하여 시간적 보장과 활동에 대한 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짜여진 계획에 의하여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 또는 자신들의 자율성보다는 강사선생님의 의도대로 예술 활동이 정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십여 년 전 열악한 환경과 난관은 많았지만 본인들 스스로의 흥으로 거리로 뛰어나와 놀 줄 알았던 청년들의 그 시퍼런 눈빛들이 참으로 그립다. 공주에 근래에 들어 예쁘고 아기자기한 야외공연장이 여러 곳에 조성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연예술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쁘게 환영하고 많은 예술인들도 공감을 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 시퍼런 눈빛들이 지금 이런 환경을 십여 년 전에 접하였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공주만의 독특한 거리공연 문화가 형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 예술문화는 자발적 보다는 계획된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창의성에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 기성의 공연문화를 하는 예술인들은 어떠한가. 아마도 공주시는 문화정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거리에서 예술인들이 판을 벌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주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 공간을 채워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자발적이라 함은 미쳐서 하고 싶은데 공간이 없는 사람 또는 돈 통을 앞에 놓고라도 생계를 위해서 하는 치열한 경우, 그리고 지역 예술발전에 대한 사명감 그리고 자부심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축제의 프로그램 중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거리공연이다.

영국 에딘버러의 프린지 공연이나 프랑스 아비뇽 축제의 Off공연들이 IN공연(메인공연)보다 더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뒤늦게 흉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영고, 무천, 조선시대의 산대놀이와 사당패 등 모든 의식행사 또는 연희가 야외에서 행하여 졌음은 물론이요 근자에는 카세트를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간 친구들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연하는 사람들의 표현 중에 텅 빈 공연장만큼 쓸쓸한 공간은 없다고 한다. 시내 곳곳에 판은 벌였는데 제 흥에 노는 풍각쟁이 없으니 행정에선 돈 들여 굿이라도 할라치면 웬 선무당이 이리도 많은지... 그 옛날 그 시퍼런 눈동자의 젊은이들이 그리워져 몇 자 적어보았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