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1세기의 정치현장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대부분 유목민이 살고 있습니다. 인구 65억 가운데 75%가 유목민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은 유목민성이 강합니다. 전 세계의 어떤 명소에 가도 대부분의 여행객은 한국인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국민 생계의 85%를 무역을 통해 먹고 살고 있습니다. 유목민시대에 패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은 뚱뚱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장애인, 병든 사람, 노약자, 컴맹, 어린이 등 입니다.

이들은 정치를 통한 국민 복지 혜택, 돌봄이 더욱 절실한 사람들이지요. 이들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들이 섬기는 자로 낮아져서 사랑의 나눔의 문화를 만들고, 먼저 희생하고 정직한 성취지향적 문화를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정치가가 통치자로 군림하거나 돈을 탐하는 정상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약자들을 약탈하거나 약육강식의 논리로 국민을 억압하는 일은 전횡적 왕조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유목민시대가 왔음에도 정치는 바뀌지 않고 더 포악한 늑대처럼 선량한 양떼들을 늑탈하고 삶의 희망마저 송두리째 빼앗는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통탄과 피눈물이 납니다.

한 예로, 우리나라 금융기관인 저축은행들이 무너져 내리는데 소위 힘 좀 쓴다는 정치인, 위정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고 어느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자 없고 힘없는 서민들만 무수히 피해를 보고 있으니 누구를 믿고 산단 말입니까?

2. 정상배가 날뛰는 이유

민주정치는 최선을 추구하지만 차선을 선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거를 통하여 정상배가 아닌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들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정치를 비하하여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논리로 금품이나 향응을 베푸는 자를 선택한다든지, 지연, 혈연, 학연을 내세워 아무나 선택한다면 결국 우리 유권자들이 정상배(즉, 돈에 눈이 어두운 인물)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정치적 무관심이나 혐오감이 확신될수록 정상배들이 나타나는 온상이 되는 것입니다. 온 국민이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이 고조되어도 안 되지만 정치가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사랑받는 정치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3. 세 가지 정치의 본질

첫째, 국민의 정치(of the people)입니다. 주권이 위정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권재민(主權在民) 즉,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자부심입니다. 예컨대 국회의원도, 시장도 주권자가 아니고 국민이 주권자라는 주인의식을 확고히 해서 만약 잘못하면 일꾼을 우리 손으로 바꾼다는 주인정신을 회복해야 하지요.

둘째, 국민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입니다. 국민자치, 주민자치를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정치는 국민 스스로의 소통과 자치를 통해 만들어 간다는 의식의 회복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은 국민 스스로 만드는 것으로 국민 모두가 정치 무대의 배우이지 관객이 아님을 명심하고 선진정치문화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셋째, 국민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입니다. 우리가 뽑는 선량들은 국민의 머슴(public servant)으로 그들을 통해 국민복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정치의 본질은 주권재민, 국민자치, 국민 복지를 실현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국민 모두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4. 사랑을 실천하는 정치

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는 링 안의 싸움닭처럼 처절하게 싸워 이기는 경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대는 지났습니다. 좌파냐 우파냐의 대결 논리로는 하나밖에 없는 유목물품인 지구를 살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의 어느 곳엔가 매달려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지구환경을 마구 파헤쳐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우리 모두는 패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란 모든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권위적 배분’이 되려면 정직한 정치, 신뢰받는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도리어 가장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약자를 돌보고 섬기는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정치로 거듭나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