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儒敎思想은 정치적 색채가 강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儒敎政治思想의 밑바닥에는 철저한 내면수행이 前提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栗谷, 金長生, 金集, 宋時烈, 宋浚吉로 이어지는 朝鮮儒學의 畿湖學脈 本據인 遯巖書院에는 凝道堂, 養性堂이 있다.

凝道堂의 柱聯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옛 부터 지금까지 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하늘, 땅, 사람이 모두 한 덩어리의 마음일 뿐이다. 마음이 형체에 부림을 당하면 禽獸에 지나지 않는다.
養性堂의 柱聯에도 이러한 말이 있다.

오직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만물의 변화를 觀한다. 내면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어떠한 길도 갈수 없다. <往古來今孰無此心 參爲三才曰惟心爾 心爲形役乃獸乃禽 惟情惟一萬變是監 當事而存靡他其適>

凝道라는 말 자체가 마음의 집중을 통한 내면수행을 드러내는 말이거니와, 屈原이 말하는 聖人은 어떠한 사물과도 통하여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와도 相通한 것이다.

이른바 格物致知라는 말도 내면의 수행을 통하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及其也 天下와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이다. 이로 보면 유교의 마음수행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치열한 내면수행을 강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치열한 내면수행을 통한 得道이후에야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孟子』「離婁篇」에서도 克明하게 드러난다.

하늘이 지은 災殃은 가히 거부할 수 있지만 스스로 지은 재앙에서는 살아날 길이 없노라. <天作? 猶可違 自作孽不可活> 철저한 내면수행이 수반되지 않으면 어떠한 정치적 행태도 용납할 수 없고 허용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최근 리비아 政權首長인 카다피의 최후를 보아도 그렇고 서울시장 후보의 상대방 까 내리기 흑색선전을 보아도 자기 자신의 내면수행을 거치지 않고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정치행보가 얼마나 큰 災殃을 불러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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