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도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시인을 안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백석 시인 역시 판금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의 이름을 아예 못 들어본 것은 아니고 그의 시 또한 전혀 못 읽어보았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소년시절, 신석성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수선화」(시집『슬픈 목가』에 수록)란 시의 헌사 부분에 ‘눈 속에 『사슴』을 보내주신 白石님께 드리는 수선화 한 폭’이란 문장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며, 유종호 평론가의 첫 평론집 『비순수의 선언』이란 책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란 시를 읽었던 것이 그것이다.

백석은 여타 월북시인들과는 입장이 다른 시인이다. 그는 애당초 북한 출신에다가 북한 거주 시인이었으며(광복 당시엔 만주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분단 이래 자연스럽게 자기 고향에 거주한 시인일 뿐이다. 그러므로 남한에서 넘어간 시인들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 바이고 북한에 잔류하며 공산체제와는 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문필생활을 한 시인이다.

주로 아동문학 작품과 아동문학평론으로 문학 활동의 명맥을 이었던 것이다. 물론 광복 이전의 그의 작품은 전혀 이데올로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올곧게 반영된 작품들이었다.

백석은 우리 민족 정서의 한 흐름을 주도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오산학교 선배이기도 했던 김소월의 맥을 이으면서, 아래로는 북간도 용정 출신 윤동주에게로 가 새로운 싹이 되기도 하고, 오늘날의 시인들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과열된 감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오늘날 젊은 시인들에게 끼친 백석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라 할만하다. 특히 백석을 오늘의 시인으로 밀어올린 요인으로는 그의 젊은 시절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씨와의 러브스토리가 일반대중에게 공개되면서부터이다.

거기다가 김영한 씨가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대원각이란 요정을 법정 스님에 헌납하여 그 자리를 길상사란 이름의 사찰로 다시 태어나게 한 일이 더욱 일반대중에게 감동을 준 탓으로서이다.

 위의 시 「여승」은 백석 시인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는 시이다. 중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시이고 대학교 수능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시라고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아주 밋밋해 보이는 시이다.

짐짓 남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듯,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내부를 들여다보면 매우 마음 아픈 인간의 숨결이 거기 진하게 흐느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는 그 구성이 소설적이다. 그래서 시점이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도록 되어 있다. 우선 첫 행이 현재의 시점이다. 시인 앞에 합장으로 인사하는 한 여승. 그녀한테서 ‘가지취의 냄새’ 가 났다는 것이고. 얼굴이 또 ‘옛날같이’ 늙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경처럼’ 서러웠다는 얘기다. 직유법인데 직유의 대상이 너무나 의외성을 가지고 있어 두고두고 놀라움과 신선감을 준다.

그 다음부터는 그 여승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인과의 인연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시인이 처음 그 여인을 만난 것은 ‘평안도 어느 금덤판(금광 일을 하는 일터)’ . 거기서 시인은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는 것이다. 그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때리며) ’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는 표현이 목구멍에 가시가 되어 아프게 걸린다.

세 번째 연은 더욱 깊은 내력을 펼쳐 놓는다. 여인의 지아비(남편)는 ‘섶벌같이 나아’가 ‘십년’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고, 여인의 ‘어린 딸’ 은 또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는 사연이 나온다. 다시 말하자면 남편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딸아이마저 죽어서 여인은 혼자 몸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인은 여승이 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마지막 연의 ‘섧게’ 우는 ‘산꿩’은 여인의 울음을 대신해서 우는 객관적 상관물이고 ‘산절의 마당귀에’ ‘떨어진’ ‘여인의 머리오리’는 역시 여인의 ‘눈물방울’의 대역이다.

얼마 전, 어느 시낭송대회에서 심사를 보는 자리가 있었다. 출연자들이 지정으로 읽어야 하는 시가 바로 이 시, 「여승」이었다. 출연자가 20명이 넘었었는데 같은 시를 20번씩이나 거푸 듣는다는 것은 하나의 고역에 가까웠다. 허지만 나는 그날 그 20번의 시낭송을 하나같이 새로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시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시낭송의 심사도 심사였지만 그날 나는 한 사람의 감상자로서 시의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함께 울고 또 울었던 것이다. 그런 뒤로 나는 이 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시인의 심정적 지지자가 되었다. 이렇게 한편의 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고도 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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