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의 굶주린 소녀

보도 사진가(photojournalist)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하여 전장을 누비며 목숨을 걸기도 한다. 또한 한 장의 사진으로 부와 영예를 얻기도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으로 고통 받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치 않고 단편적인 한 부분만을 가지고 비난할 때 상대방이 겪게 되는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잘 말해주는 사건과 사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국도 상에서 벌어진 상황이 한 장의 사진을 생각나게 하였고, 날 시험에 들게 하였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 화창한 가을날에 도로에서 벌어진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도로상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1톤 트럭에 갓 수확한 볏 가마를 산더미처럼 싣고 운행하는 트럭이 보였다. 헌데 무엇이 문제인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정상적으로 적재돼 있던 볏 가마가 조금씩 조금씩 옆으로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뒤에서 쫒아가던 나는 볏 가마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며 따라가게 되었다. 얼마가지 않아 트럭에 실려 있던 볏 가마는 도로에 닿게 되었고, 급기야 벼가 도로에 쏟아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운전자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극적인 상황을 본 후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고 세 갈래 길이 나타나자 나는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 어떻게 상황이 전개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운전자에게 알리어 더 이상 벼가 쏟아지지 않도록 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에서 ‘수단의 굶주린 소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을 보면, 오랜 굶주림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소녀, 그리고 그 뒤에서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듯 쳐다보고 있는 독수리, 바로 케빈 카터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게 된 시대적 배경은 이렇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진 수단은 아파르트 헤이트 정권의 인종분리정책으로 오랜 기간 내전이 계속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가뭄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고 죽어 갔으며, 설상가상으로 국제적인 차원의 원조도 독재정권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기아에 허덕이던 난민들에게 구호물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난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그런 어려운 시기였다.

이와 같은 실상을 보도하기 위해 아프리카 수단 남부에 들어간 케빈 카터가 우연히 마주친 것은 아요드 식량센터로 가는 도중에 힘이 다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앉는 것이 시야에 들어 왔다.

그는 독수리가 날개 짓을 하게 되면 생동감 있고 극적인 사진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기다렸으나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셔터를 누르고 소녀를 구했다고 한다.

케빈 카터가 찍은 이 사진은 1993년 3월 26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리면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며, 이듬해인 1994년에 보도 사진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된다.

퓰리처상 수상을 계기로 촬영보다는 먼저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는 비난 여론이 확산하게 되고, 케빈 카터는 이 상을 수상 후 3개월 뒤에 가족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33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게 된다.   

그러면 왜 이 사진이 유명한 사진이 되었고, 무엇이 쟁점이 되었는가?

보도사진가의 생명은 리얼리티이다. 즉 포토저널리스트는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한 걸음에 달려가기도 하며,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며 기다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보도 사진가는 현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림으로서 더 이상 비극과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이 발표되고 나자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동안 아프리카 구호에 관심이 없었던 서방국가들도 아프리카의 기아와 빈곤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난민구제를 위한 지원이 활성화 됐다고 한다.

이 사진이 쟁점화 되었던 것은 윤리적인 문제와 보도사진가로의 역할 중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이었다.

윤리적인 문제가 선행 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소녀를 구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는 것이고, 포토저널리스트로서의 입장은 가공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를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비윤리적이라고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케빈 카터가 이 사진을 찍지 않고 소녀를 구했다면 아프리카에서 굶주림과 기아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았을까? 가령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 사진만큼 파괴력이 있었을까? 아프리카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굶주림과 기아와 전염병으로 1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이 사진이 발표되고 나서 아프리카는 서방국가들로부터 구호의 손길을 받게 되었고,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지만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되고, 지금도 윤리적인 문제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인 것이다. 

이 사진이 시사 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에서 하나를 보자면 이 사진으로 인하여 난민구제를 위한 지원이 활성화 됐다는 사실과 케빈 카터가 겪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이해하지 않고 그를  단지 명성이나 돈을 위해 그 상황을 이용한 비윤리적인 사진가로 비난을 함으로써 본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진이 주는 메시지도 가슴 아프고 마음을 시리게 하지만, 뒷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그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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