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냉장고 / 안과 밖을 깨끗이 닦은 엄마 / 마른행주질 하시곤 문짝에 뽀뽀했다 / 다둑다둑 등판 두드려 주며 / 혼자 말했다

어느 새 / 15년이나 되었구나 / 그 동안 애썼다 / 정말 수고 많았다
새 냉장고 타고 온 트럭에 / 고장 난 냉장고 태워 보낸 엄마 / 한참 동안 / 대문 밖에 서 계셨다( 엄마의 배웅 / 유희윤)

고장 난 냉장고를 깨끗이 닦고 뽀뽀하고 등판까지 두드려 주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어려운 살림에 장만한 냉장고를 십오 년 동안이나 고장 날까 조심하는 마음과 그 긴 세월을 식구들의 반찬과 먹을거리를 지켜준 냉장고의 수고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감동적인 시이다.

위의 시는 며칠 전 조선일보가 추천한 ‘가슴으로 읽는 동시’에 실린 작품이다. 시에서 쓰는 말은 흔히 띄어쓰기 규정에 벗어나기도 하고,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를 사용하여 시적 효과를 높일 수가 있다. 심지어 ‘오감도’를 쓴 시인 이상은 시의 문장을 모두 붙여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의 정서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맞춤법 규정을 잘 지킬 때 더 큰 시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위의 시에 나타난 맞춤법 규정의 오류를 살펴본다.

먼저 문장이 끝날 때는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데, 이 시에는 마침표가 없다. 물음표나 느낌표, 쉼표, 말없음표 등 ……, 현행 19개의 문장부호도 모두 하나의 글자라고 생각하고 정확히 적어야 한다.

또한 ‘15년이나 되었구나.’에서 ‘15 년’으로 띄어 써야 한다. 붙여 쓰면 순서를 나타내지만, 띄어 쓰면 기간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냉장고를 15 년 동안 사용한 기간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12월 3일부터 3 일 동안 시험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에서 ‘3일’의 표기도 순서와 기간에 따라 표기가 달라진 것이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참혹한 나치 감옥 어느 벽에 이런 낙서가 붙어 있었다.

<God is no where.> - 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에 누군가가 이 글을 이렇게 고쳐놓았다고 한다.
<God is now here.> - 신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w’자의 위치를 한 칸 옮겼을 뿐인데 의미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었다. 띄어쓰기로 문장의 의미를 달라지게 하는 것은 한글이나 알파벳이 같은가 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새 문자를 풀어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띄어쓰기 규정이 없었다. 아마도 글자를 모두 붙여 쓰는 중국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 후 500여 년 동안 한글 문장과 작품들은 모두 붙여 써왔다.

역사적으로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사용하기는 1896년 4월7일 독립신문이 창간되면서부터다. 서재필, 유길준 등 서양의 문물을 경험한 분들이 알파벳처럼 우리 한글도 띄어 쓸 것을 주장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띄어쓰기 규정은 1933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만든 띄어쓰기 규정에서 비롯한다. 이를 몇 차례 다시 정리하여 1988년 국가에서 만든 <한글 맞춤법> 제41항부터 제50항까지 10 개 항이 현행 띄어쓰기 규정이다.

①오늘밤나무사온다.
②큰아버지는 언제나 큰소리만 치신다.
③돈 이만 원, 돈이 만 원 
  
띄어쓰기는 문장과 낱말의 뜻을 선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독서력을 향상시킨다. 문장 ①은 띄어쓰기에 따라 뜻이 스무 가지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오’와 ‘늘’을 띄면 감탄과 항상이라는 의미이고, ‘오늘’을 띄면 ‘밤나무’를 사오는 것이고, ‘오늘밤’을 띄면, ‘나무’를 사온다는 뜻이 된다. ‘나’를 띄면 ‘무’를 사오는 뜻이고, ‘나무사’를 띄면 나씨 성의 검객을 뜻한다.

문장 ②의 ‘큰아버지’는 아버지의 형님이고, ‘큰’을 띄면 키가 큰 아버지라는 뜻이다. ‘큰소리’도 야단을 치거나 뱃심 좋게 하는 말이지만, ‘큰’을 띄면 크게 소리 내는 말이라는 뜻이 된다. ③은 20,000원이라는 뜻이지만, ‘돈이 만 원’이라면 10,000원이라는 뜻이 된다.

띄어쓰기 규정은 참 어렵다. 그렇다고 이에 따라 의미가 너무도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버릴 수도 없는 우리 문자 생활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처럼 원칙과 허용을 포함한 규정은 너무 어려우므로, 어법을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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