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성북동에는 시민문화유산 1호가 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이다.

이 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전통한옥으로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하던 곳이라 한다.

그런데 혜곡 선생이 작고한 1984년 이후 이 집은 도시 개발의 여파로 존립의 위기에 부딪쳤다.

이에 뜻있는 사람들이 시민운동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를 결성하여 그 집을 매입하면서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시민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살려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살려 최순우 옛집은 시민유산 1호로 지정 되었다.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란 ‘국민 스스로의 힘에 의해 신뢰가 만들어지는 조직’이란 뜻으로 시민 자발 참여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은 ‘자연이 아름답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를 보존하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라는 명칭으로 1895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산업시대를 맞이하면서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환경 파괴를 비롯하여 각종 사회문제가 제기되던 시절이었다.

공주는 고대는 차치하고서라도 1602년에 충청도 감영이 들어선 이후 1932년 대전으로 도청이 옮겨갈 때까지 330년간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그런데도 공주에는 조선시대의 전통 고택이나 근대시기의 건축물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영명학교의 옛 건물이 헐리더니 제일은행 옛 건물이 자취를 감추고, 공제의원, 엽연초 건물 등의 근대건축물들이 줄줄이 헐려 나갔다. 이런 일이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최근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참으로 아쉽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연찮게 공주의 근대시기 주요 건축물들이 대부분 헐리고 난 뒤에 시작한 것이 고도육성사업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이 참말 다행스런 일이다.

이제는 잃을 것도 별로 없지만 더 이상 잃지 말고 고도를 육성하자는 시책이니 말이다. 당국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시책으로 시민을 상대로 ‘공주 고도육성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하여 고도육성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함양하는데 힘쓰고 있다. 고도육성사업은 옛 것을 복원하여 육성하는 것보다는 옛 것을 잘 지켜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중국 윈난성의 리장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성으로 그들이 살아가던 살림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아니 남아 있다기 보다는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옛집에서 기거도 할 뿐만 아니라 그 장소가 식당이요 여관이며 기념품상이고 이발소이며 카페이다.

건물의 모습은 수백 년 전 그대로이나 거리의 기능과 역할은 오늘날과 똑 같다. 그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재급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집단으로 옛 모습 그대로 간직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공주의 경우 당국이나 시민이 너무나 무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앞으로는 여론을 조성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남겨야 할 유산들은 보호하고 유지해야 한다.

그러자면 기금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시민의 헌금과 시당국의 기금 출연으로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당국의 힘으로 어려울 때 시민들이 설득하고 재원을 마련하는 등 측면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셔널트러스트의 역할인 것이다.

이 운동이 한국에도 도입되어 많은 문화재와 자연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나주 도래마을 옛집’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이 마을의 경우, 다 쓰러져가던 한옥집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운동과 기금 조성, 우리 것을 지켜야겠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되살아났다.

시민유산2호로 지정된 도래마을 옛집은 문화유산을 아끼는 공주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근대 유산을 보존하자는 것은 단지 옛 것이 좋다거나 오래된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문화 활동의 터전으로 문화유산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문 까닭이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