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백제기악 공연을 유럽에 선보이기 위해 프랑스와 영국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특히 백제시대에 성행했던 가면극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다는 자부심과 설레임으로 마치 문화전도사가 된 양 큰 기대를 갖고 첫 목적지인 파리 외곽의 샤를드골(Charles de Gaulle) 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 파리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인지 몰라도 드골 공항의 첫인상은 회색 빛 견고한 구조물이라는 생각 외에는 파리의 관문치고는 무척이나 예술적이지 않았음에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듯 사람들은 어느 도시를 처음 방문할 때에는 그 도시가 갖고 있는 특징이나 이미지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적잖은 기대를 가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주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찾고 있으며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백제의 고도이며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늘 수식어를 붙이기 전에 그것에 걸 맞는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머리를 모아 일관성 있게 계획하고 단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공주는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고대신화인 고마나루 전설과 백제시대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철학적 정신문화와 예술적 작품들을 중심으로 건축, 미술, 공연, 상품들이 일관성 있게 재생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소수예술인들의 산발적인 노력들은 있었지만 개인적 취향으로 인한 즉흥적인 것이 다수였고 작업의 연속성 또한 전무한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파리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파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세느강에는 한강의 여의도처럼 시떼(Cite) 섬이 있다. 유람선을 타고 그 섬을 지나다보면 한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의 외곽에는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 시간의 신(神) 크로노스(Kronos)와 정의의 신(神) 디케(Dike)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조금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조형물만 보고도 단숨에 그곳이 법과 관련된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하여 확인차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프랑스 법무부 건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시간은 날지만 법은 부동(不動)’이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옛날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어떻게 현재 프랑스의 딱딱한 법무부 건물에 상징적으로 새겨지고 덤으로 부드러운 예술적 이미지로 권위적인 모습을 살짝 희석시켰는지 그들의 발상을 보며 우리 신화속의 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우리는 왜 그들을 깨우지 않고 우리 곁에 두고 있지 않는 가에 대하여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다시 공주로 와보자. 나는 공주가 신화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마나루 전설이라고 말하지만 전설속의 곰 낭자는 이미 그 옛날 신으로 격상하여 곰 사당에 엄연히 모셔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교적 개념의 미신이니 우상이니 하지만 나는 문화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헤브라이(Hebrew) 문화권의 산물인 기독교가 헬레니즘(Hellenism) 문화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가지고 미신이나 우상 시비를 하는 것을 나는 본적이 없다.

그것은 그냥 문화적 산물이고 현대에서는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는 그러한 중요한 자산을 갖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공주 그 어디에도 신화 속 곰 낭자는 자취가 없다.

눈에 보이는 동물 모습의 딱딱한 곰 조형물은 있어도 애틋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인 곰 낭자의 아름다운 자태는 어느 예술인의 손끝에서도 살아나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신화를 동화로만 묶어 두지 말고 우리 역사를 유적과 유물로만 접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우리들의 가치 있는 것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하는 문화융합 운동을 함께 해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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