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교육나눔 실천을 위한 해외교육봉사 체험수기

제5일(1월 25일) 네팔의 산꼭대기에 인터넷을 설치해준 보람된 날

6시반 경 기상하였다. 나무문을 여니 훤한 먼동이 터 오르고 있다. 간밤에는 어린 12살의 소년이 62세의 할아버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자다가 보니 나는 침낭 속에 있었고 그 위에 이불을 덮었는데 뒤척이다 보니 어쩌다 이불이 아서 따망 쪽으로 간 것이고 그것을 안 소년이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것을 잠결에 느꼈다.

▲ 아침 수라즈 따망과 운동

어린 아이의 배려에 감동했고 없이 살고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한 소년이지만 남을 배려하고 아껴주려는 순수한 인간 감정이 풍부한 것이 너무 감동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게 교육”이 되는 우리아이들을 잠깐 동안 걱정해 보았다.

세면을 하러 밖으로 나왔는데 수도관 옆에 덩그러니 비누만 놓여 있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손짓 발짓으로 그릇을 달라고 요구를 했는데 이번에는 새 비누를 가져온다. 아마 깨끗한 새 비누를 달라고 한 것으로 알아차린 것 같다. 안되겠어서 수라즈 따망을 불러 영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 세수할 그릇을 달라고 하니 그제야 부엌에서 조그만 냄비를 가져온다.

▲ 공중제비 돌기

이곳에서는 세수 대야가 없고 그런 그릇에다 물을 담아 세수를 하고 발을 씻는다는 개념자체가 없으며 세숫대야에 얼굴을 씻는 것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졸졸 흐르는 물에 세수하고 양치하는 정도인 것이다. 가져다 준 조그만 냄비에다 물을 받아 세수, 면도 그리고 발까지 간신히 닦았다.

어제 아서 따망 집과는 달이 아주머니가 딸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시는 것 같았다. 밖에서 수라즈 따망과 장난을 하는데 이 아이가 운동 신경이 무척 좋다. 공중제비돌기도 자연스럽게 하고 알아보니 이곳에서 ‘가라대’를 배워 메달도 따고 하였다.

▲ 등교 도중에 유채꽃밭에서

메달을 보자고 하니까 메달 세 개를 보여주며 나에게 한 개를 선물하겠다고 하여 기념으로 받아왔다. ‘가라대’는 우리나라 태권도와 같이 일본 격투기인데 이곳 네팔에 일본이 일찍부터 진출하여 일본의 격투기인 ‘가라데’가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한 시간 가량 주인아주머니가 고생하여 만든 음식이 우리식으로 하면 빈대떡 같은 것이었다. 네팔의 빈대떡과 비스켓,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고 학생들과 등교를 하였다. 오늘의 오전 행사는 명랑운동회, 아이들과 풍선놀이, 선생님들과 줄다리기 그리고 일부 코너에서는 페이스페인팅 등을 하며 유쾌한 시간들을 보냈다.

▲ 인터넷을 신기하게 보는 학생들

환송식의 한 행사로 장학금 전달이 있었다. 부미마타 학교를 나온 장래가 촉망되는 상급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여 그들의 학업을 돕는 것이고 장학금은 우리 여행비의 일부에서 충당되는 것이다. 

오전에 인터넷 와이파이(Wi Fi)망이 개통되었다. 부미마타 학교 꼭대기에 무선 송신기를 달아 저 아래 평지 면소재지에서 인터넷 송신을 한 후 수신기로 받아서 학교 부근의 단말기에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시스템이다. 어제까지도 학교에서 Wi-Fi 가 터지지 않아 카톡을 못했는데 인터넷이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동안 못 전한 네팔의 소식을 카톡과 페이스북을 통하여 전하였고 충남교육청의 배종남 장학사와도 화상통화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네이트온을 통해 충분히 연습을 하고 화상연결이 되어야하는데 담당 장학사가 회의 등으로 바빠서 연결이 잘 안 된다.

▲ 이별이 아쉬워 쫓아오는 학생들

장학사가 시간이 되어 우리에게 연결할 때는 우리가 수료식,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서로 연결이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그곳 아이들에게 우리 충남교육청의 홈페이지를 보여주고 이것이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로 인터넷 개통식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환송식이 열렸다. 부미마타 어린아이들도 울고 우리 선생님들도 울고 비록 짧은 2박 3일의 일정이지만 같은 방에서 먹고 자고 이들의 어려운 생활을 더 절실히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출발하는 지프차를 따라 흙먼지를 마시며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하염없이 따라온다. 정말로 무릉도원에서의 꿈같은 2박 3일이 지나가는 것이다.

▲ 세계최대 시바의 신상

카트만두로 들어가는 도중 세계에서 가장 큰 시바신(힌두교의 주신)의 신상이 있는 힌두 사원에 들렸다. 이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되어있는 박타푸르에 들렸다. 말라 왕조의 옛 서울로 889년에 아난다 데바왕이 건설하여 힌두교와 비슈뉴 신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왕궁이 있는 도시에는 왕궁광장(더르바르 스퀘어)이 있는데 주변의 건물과 조각들이 있고 특히 문틀의 목각이 빼어나게 정교하다. 주변의 나야타폴라 사원은 36m 높이의 5층 석탑이 잇는 곳으로 1700년대 건설된 것으로 탑의 균형이 잘 잡힌 네와라 예술의 걸작품이다. 사원과 목욕탕 그리고 코브라동상이 특이하다.

이어 옛날의 인공호수를 찾았는데 주변의 나무에 까마귀 떼가 엄청나다. 카트만두로 들어오는 길 차, 오토바이 행인들이 뒤엉켜 무질서가 난무하는 도시인데 사람들은 그 길을 용케도 잘도 피해 다닌다.

▲ 박타푸르 건물

제6일(1월 26일) 히말라야의 마운틴 플라잇과 에베레스트 산

 

 

 

세계 최고봉을 보기위해 4시 30분 기상. 5시 40분 호텔 출발, 트리뷰반 비행장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공항이 한 곳이기에 대형비행기이든 소형 경비행기이든 모든 비행기가 이곳 트리뷰반 비행장에서 이·착륙을 한다.

우리는 사전에 예약을 해두어 7시 비행기를 탑승하게 되었다. 7시가 되면서 태양이 떠오르고 7시 40분 경 해발 1,350m 경에 위치한 카트만두 분지를 박차 오른 붓다 항공(Buddha Air) 비행기는 세계 최고의 설산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을 비행하며 최정상인 에베레스트를 향하여 동쪽으로 항해한다.

▲ 사원의 탑과 수호상

비행기의 탑승 손님은 처음에는 왼쪽 라인에 앉은 승객이 히말라야의 산들을 잘 보이고 회항할 때는 오른쪽에 앉은 손님이 히말라야 산군들을 더 잘 보이게 되었다. 마침 비행기의 창문 쪽 좌우 한자리만 승객을 배치하여 우리 일행은 서로 좌석을 합석하면서 갈 때와 올 때의 경관을 모두 잘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보는 산군들은 카트만두의 동쪽 히말라야에 있는 산군들을 보게 되는데 8천 미터 이상의 고봉 중 처음에 나타나는 것이 멀리보이는 시샤 팡마(SHISHA PANGMA- 8013)이다.

▲ 코브라와 왕궁목욕탕

이어서 가깝기 때문에 높아 보이는 아름다운 봉우리 가우리 샹카(7134m) 탁자처럼 보이는 메룬체(7181m) 또 멀리 보이는 초오유((CHO_OYU-8201m) 그리고 웅장하고 의젓한 세계 최고의 봉우리 에베레스트(EVEREST-8848, 이곳말로는 SAGARMATHA)가 7,8천 미터 급의 산들을 발아래 두고 떡 버티고 있는데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거봉답게 의젓하고 멋지게 자라잡고 있다.

바로 옆에 유명한 롯체봉(LHOTSE-8516m)이 보이고 멀리 마칼루(MAKALU-8463m)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볼 수 없지만 더 동쪽에 칸첸중가(KANCHANJUNGA-8586m)가 있다. 120$(US $)의 비싼 돈을 주고 한 체험이지만 히말라야의 연봉들을 모두 보고 우리가 한국원정대의 활동을 통해 귀에 익은 봉우리들을 설명을 들으며 세계 최고의 에베레스트를 바로 코앞에서 보게 되니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 항공기에서 찍은 에베레스트의 위용

오는 길에 붓다항공에서 탑승 기념물을 주기도 한다. 그곳에 쓰여 있는 말이 멋지다.( I did not climb Mt, Everest... but touched it with my heart !) 내 탑승 넘버는 501498번이다.

멋진 마운틴 플라잇을 마치고 9시경 호텔로 돌아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거칠게 항의하고 경찰이 경비를 서고 시끄러운 호각소리와 하께 포크레인이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거리는 난장판이 되고 우리는 호텔을 바로 앞에 두고 더 차량이 운행하지 못해 도보로 호텔로 이동 10시경에나 늦은 아침을 먹었다.

▲ 건물 강제철거

20시 30분 카트만두를 출발 서쪽으로 향한다. 1번국도 겸 고속도로라는데 중앙선도 없고 곳곳에 마을이 있으며 사람들도 건너다닌다. 11시 경 마을에 들러 포도, 귤, 바나나 등의 과일을 산후 또 출발하였다.

곳곳에 노점상들이 사탕수수를 들고 나와서 판매를 하는데 옛날 우리나라에서 먹던 사탕수수보다 훨씬 굵고 과즙이 많아 달콤하였다. 고속도로 비를 받는 톨게이트의 모습이 엄청 초라하고 소규모이며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한 장 사진을 찍었다.

카트만두는 고원에 있는 분지이다. 그리하여 포카라로 가는 길은 카트만두 분지에서 한 참을 오르다가 분지의 서쪽 꼭대기쯤부터는 계속 비탈길로 내려가는데 그 비탈길부터 계곡물이 흐르며 계곡은 시간이 갈수록 큰 강물로 변화되며 급경사가 있는 곳은 여름철에 래프팅을 하기에 좋을 것 같다.

▲ 사탕수수장수 아줌마

아니나 다를까 가끔 래프팅 안내 팻말을 보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쇠줄다리 있는 부근의 정차장에 잠깐 정차하여 계곡을 건너보았다. 아래는 맑은 물이 흐르고 쇠줄 건너곳곳에 많은 집들이 있으며 이들은 이 쇠줄다리를 이용하여 도시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계곡 건너 어느 외딴집은 도르래를 연결하여 사람과 짐이 계곡을 건너다니도록 설치한 곳도 보였다. 곳곳에 수백 년 넘어 보이는 노거수들이 있고 그늘 아래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었는데 옛날 부처님이 이런 나무 아래에서 해탈하고 설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 고속도로 톨게이트

이 네팔의 남부 부드가야가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기에 말이다. 3시간가량을 이동한 후 차량이 좀 뜸한 것을 느꼈는데 많은 트럭들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도 쪽으로 내려가는 차량들과 같이 오다 많은 차량들은 왼쪽으로 꺾어져 인도 방향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서남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까 흐르던 강은 인도 쪽으로 내려가고 아마도 인도의 갠지스 강과 합류하겠지, 그리고 새로운 깨끗한 강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후 3시 경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 쇠줄 강다리

3시 30분 경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고속도로변의 식당. 이름이 그린 레스토랑인데 이름처럼 깨끗하고 좋은 환경이었다. 메뉴는 전통음식 ‘달밧’의 재료들이 놓여 있고 우리가 선택해서 먹는 ‘달밧’ 부페였다. 4시 15분 경 식당을 출발 차는 다시 달렸다.

차의 맨 앞에서 타고 보니 중앙선도 없는 도로를 차들이 엄청 빨리 다니고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수시로 무단 횡단을 하고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수시로 추월을 한다. 아마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목격한 교통사고만도 3~4건이 된다.

▲ 고목나무 아래

트럭이 길 옆에 쳐 박혀 있기도 하고 한 사건은 보행자가 길가에 치어 쓰러져 있는데 흉측해서 잘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렸다. 맨 앞에 탄 것을 후회하였다. 우리의 운전기사 마더버는 그런 상황에서도 아주 노련하게 운전을 잘하는 것이었다.

장장 7시간 반 만에 6시경 포카라에 들어 왔다. “마더버 더파이라잇 던네밧(수고했습니다)”하고 마더버를 박수쳐주며 ‘You are best Driver“라고 칭찬해주자 환하게 웃는다.

산악인들이 꿈에 그리는 도시 포카라. 제2도시라 하지만 조그만 관광도시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마차푸차레가 안나푸르나(8091m- 프랑스 원정대 에르조그와 라슈날이 1950년에 맨 처음 등정한 봉우리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많다.

 

▲ 그린 레스토랑에서

 

Anna- 음식물. Pruna- 가득 채우다 라는 뜻으로 풍요의 여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연봉들이 보이는데 마차푸차레를 처음 본 느낌은 스위스의 마터호른과 꼭 닮았다 하는 느낌이었다.

깎아지른 남벽은 급경사로 눈이 쌓일 수 없는 새까만 암석 직벽이고 삼각뿔 모양의 산 정상이 유난히 뾰쪽한 Peak를 이루었다. 우리 호텔은 Hotel View Point-보이는 것이 아주 장관인 장관호텔이다.

나는 최고층 5층에 배정되었다. 짐을 풀고 옥상에 올라보니 동쪽에는 달이 떠오르고 북쪽에는 마차푸차레를 비롯한 안나푸르나의 연봉이 펼쳐지는데 정말로 장관이었다. 8시경 저녁을 일찍 먹고 골아 떨어졌다.      

▲ 마차푸차레 위용과 모터 행글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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