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건져올리기

물고기 건져올리기

1944년 4월, 나는 도키와소학교 4학년, 우리나이로 10살이었다. 제민천 둔치에는 병아리도 암탉도 없었다. 주변은 적막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전쟁 탓일까”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 제민천 옛사진(버들다리 인근에서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봄의 햇빛을 받아 제민천의 수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제민천의 물살이 졸졸거리는 청명한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해방 후에도 제민천에 몇 번인가 고기를 잡으러 갔다. 천변의 풀이 무성하게 자란 냇가를 한쪽 발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어망이나 뜰채를 들어 올리면, 송사리, 민물 새우, 미꾸라지 등이 몇 마리 씩이나 잡혔다.

길이가 꽤 되는 피라미의 은빛 비늘이 소쿠리 안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게 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한 여름 태양 빛이  반사하여 눈부시게 느껴졌다. 난 생 처음으로 피라미를 잡은 것이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물고기를 헤엄치게 하면서 놀았다.

민물새우는 하룻밤 지나면 아침에는 붉은 색이 되어 죽어 있었다. 송사리는 날이 지나면서 조금씩 죽어갔다. 미꾸라지만은 오래 살아있었다.

낚시에 얽힌 추억

태풍이 한 번 지나가면, 금강은 탁류가 소용돌이 친다. 제민천 하류에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갔다. 금강과 제민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피라미와 모래무지가 많이 잡혔다. 간혹 규규까지 잡혀 아버지는 아주 기뻐하셨다. 그 사이 먹이로 쓰는 지렁이가 바닥나 버렸다.

나는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지렁이를 잡아 또 와요”하고 졸랐다. 아버지는 “오늘은 그만 두지. 내일은 멍텅구리 낚시를 하러 오자”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나 혼자 아까 거기에서 낚시 하고 싶어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렴, 필요한 것을 챙겨줄테니.”하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낚시 바늘 2개와 봉이 붙어 있는 낚시줄을 작은 막대기에 매주셨다. “고기 넣는 망은요?”하고 묻자 아버지는 “대신 이걸 가지고 가면 되지 !”하시고 멍텅구리 낚시에 매는 굵은 실을 30cm 길이로 끊었다.

이 실 끝에 가느다란 막대를, 반대쪽에는 굵은 막대를 매주셨다. “가는 쪽에 물고기 입을 넣어 아가미를 통하여 실 아래까지 내려오게 하면 되는거야”라고 가르쳐 주셨다. “날 저물기 전에 들어 오렴” 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나는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아까 그 장소에서 낚시줄을 내리자 곧 낚싯대 끝이 가볍게 움직였다. 몇 번을 계속해서 낚싯대 끝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낚싯대를 들어올리니 피라미였다.

피라미가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계속 올라와, 금방 10마리가 되었다. 어버지께 “ ‘이렇게 잡았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보여드리면 아버지는 어떤 얼굴을 하실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물고기가 잡히는 간격이 점차 늘어지고 있었다. 11마리를 잡은 후로는 전혀 움직임이 오지 않았다. “아빠가 걱정하시면 안되니까 슬슬 돌아가야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돌연 낚싯대 끝이 금강 쪽을 향하여 크게 휘었다. 바로 낚싯대를 잡아챘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물고기를 끌어 당겼다. 흰 물살이 솟구치며 거의 동시에 물고기가 수면 위에 드러났다. 그 순간 물고기는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낚시봉에서 아래쪽 줄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아버지와 또 그곳에 갔다. 아버지가 멍텅구리 낚시를 던진 옆에서 다른 사람이 낚시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멍텅구리 낚시에 걸리면 곤란한데”하고 걱정하셨다. 밤 9시 경 다른 낚시꾼이 “뭔가에 걸렸다”고 하면서 낚싯줄을 들어 올리려고 하였다.

아버지가 걱정하신대로 옆 사람의 낚싯줄이 아버지의 멍텅구리 낚시에 걸린 것이었다. 아버지는 급히 옆으로 가서 “이쪽이 설치한 쪽”이라 하시면서, 멍텅구리 낚시를 끌어 올렸다. 어느 사이 장어 두 마리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2000년 4월 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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