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6일 공주문화원 강당에서는 백제기악의 K-팝 현상이라는 주제로 문화예술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백제기악전승보전회 강정길 회장이 공주대학교 구중회 교수를 초청하여 한류의 원조격인 백제기악(百濟伎樂)에 대한 총론을 듣고 참여자들과 질의 응답하는 토크쇼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행사의 진행방식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참석자들의 높은 관심도와 더불어 전문 학술 세미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악, 춤, 악기, 연희 방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날 행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는 아마도 백제기악을 일본에 전하여 준 미마지(味摩之 사람이름 또는 연희단체)가 지금 우리가 백제기악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무언극 탈놀이를 어디에서 배워 와서 일본에 전해 주었는가에 대한 논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원로 국악학자 이혜구 선생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은 여러 학자들이 일본 서기(日本書紀)와 교훈초에 나와 있는 자료를 토대로 백제기악에 대한 많은 연구와 논의를 해 왔지만 많은 부분을 일본자료에 의존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백제기악의 잔영(殘影)으로 양주별산대놀이가 백제기악과 가장 흡사하다는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가 소위 백제기악이라고 불리는 탈놀이를 일본에 전해준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어디에서 배워왔는지 또는 그저 단순하게 문화적으로 받기만 했는지는 백제시대 동아시아의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먼저 이날 토크쇼의 가장 큰 의미이자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미마지가 배워왔다는 오국(吳國 오나라)에 대하여 구중회 교수의 새로운 주장이 핵심인 것이다.

그동안 앞서 이야기 해 왔지만 백제기악은 이혜구가 1957년 한국음악연구회에 ‘산대극과 기악’을 발표하면서 “백제인 미마지가 오나라 음악을 일본에 전하였다”라고 말한 것에 근거하여 지금에 이른 것인데 오나라와의 시대가 맞지 않아 혼란만 초래하였을 뿐 누구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구중회 교수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덕무 선생이 집필한 ‘천정관 전서’에서 미마지 백제기악이 오 지방에서 왔다는 주장에 근거하여 오나라의 악(樂)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소리가 ‘오성가(吳聲歌)’였고 그것을 배워 와서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본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라고 이야기하였다.

물론 구중회 교수의 이러한 주장이 완전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발품을 팔면서 연구해온 그 분의 노력에 의한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며 이순(耳順)을 넘긴 이 순간에도 변함없는 치열한 학구열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자료와 새로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동시에 오성곡(吳聲曲)은 무엇이고 그것이 연말과 연초에 지금도 풍속에 남아있다는 오현(吳縣)지방은 어디인지 답사를 통하여 음악, 무용, 탈, 악기, 복식, 연희 등에 대하여 각 장르 예술인들이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2003년 일본 천리대(天理大)에서 사토 고오지(佐藤浩司)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10편이 넘는 비디오테이프에는 이미 오래 전 일본의 여러 학술재단과 NHK의 후원을 받아 인도와 중국의 소수민족 그리고 한국 일본 등 까지 현지답사를 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그들의 치열한 역사인식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 공주민속극박물관장이셨던 심우성 선생은 2003년 필자와 함께한 ‘제21회 전국연극제 기념 학술 심포지엄’ 인사말에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연극 유산의 하나인 백제 시대의 탈놀이 ‘기악’이 그동안 전하는 사료의 부족과 연구자들의 무관심으로 한때 잊혀져가고 있었음이 사실이라고 고백하였다.

이제 다소 늦은 감은 있더라도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의 관심 속에 백제기악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연극 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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