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날씨 좋은 어느 날.

미국인 알버트 모어(Albert Mohr)는 그의 부인과 함께 금강 변을 거닐고 있었다. 그들은 공주에 오기 전 부산 영도에 머물면서 신석기 시대 조개 무덤을 연구하던 대학원생 부부였다.

한편 모어 부부가 금강 변을 찾기 얼마 전 공주에는 큰 홍수가 난적이 있었는데, 지반이 약한 부분의 흙이 씻겨나가 강변의 일부 단층이 무너진 상태였다.

앨버트는 이 무너진 토층에서 뗀석기의 일부를 발견했다. 금강 변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우리나라 구석기 사람들의 흔적이 최초로 발견된 큰 사건이었다.

앨버트는 서둘러 이 사실을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에게 알렸고, 기초조사를 거쳐 이듬해부터 곧 바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가 구석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는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인식되고 있었는데, 이를 단숨에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로 석장리 유적은 비로서 우리나라의 국사책에서도 구석기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위의 글은 필자가 교육장을 하던 작년 8월에 공주의 초·중·고 교사들과 장학사들이 공주대학교 이해준 교수의 자문을 받아 만든 ‘공주 문화유산 이야기 자료집’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맨 첫 머리에 나오는 글을 인용한 것이다.

작년에 공주교육지원청에서는 공주 학생들의 내 고장 사랑과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자랑스러운 공주의 문화유산 이야기 자료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대회를 백제문화제 기간 중에 개최한 적이 있다. 공주를 아끼는 많은 지역 인사들의 호응과 칭찬이 많았던 사업이다.

우리 공주는 위의 책 ‘공주 문화유산 이야기 자료집’에서도 보다시피 자랑스러운 역사의 흔적이 너무나 많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석장리 구석기 유적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구석기 발굴의 효시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역사를 순식간에 몇 십만 년을 끌어 올리고, 우리나라 역사책을 다시 쓰게 한 대 사건의 현장이다.

이렇게 엄청난 유적이 무령왕릉의 발굴과 함께 뒷전으로 나 앉아 빛을 잃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석장리 구석기 유적이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적인 의미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몇 가지만 강조해보겠다.

첫째, 석장리 유적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손보기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세대 발굴 팀에 의해 무려 12차례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역사를 약 30만 년 전까지 복원해 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의 효시가 되는 것이다.

둘째, 석장리 유적에서는 갈대나 잡풀, 가죽과 같은 재료를 활용하여 야외에 지은 집터가 발굴되었다. 이 집에서 불을 피우던 화덕이 발견되었고, 화덕 안에는 나무 숯과 재가 발견되어 지금부터 약 2만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집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크기로 보아 약 8~10여 명이 생활했을 것이다. 이러한 온전한 집터의 발견으로 이곳은 과학적, 실증적으로 구석기 시대의 생활을 증명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셋째, 석장리 유적에서는 다양한 층에서 석기가 나왔는데 외날찍개, 주먹도끼 등의 전기 구석기, 찌르개와 같은 중기 구석기. 긁개, 찌르개, 돌날몸돌 등 후기 구석기 유물들이 고루고루 발견되어 오랜 동안 구석기인들이 생활하였음을 증명해 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의 보물 창고이다.

넷째,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발굴이 단초가 되어 연천 전곡리, 파주 금파리, 제천 점말 용굴, 단양 수양개, 대전 용호동 등의 많은 구석기 유적들이 남한 곳곳에서 발굴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 유적이 대체로 후기 구석기에 머무른 것과 비교하여 석장리에서는 전기, 중기, 후기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됨으로서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요성을 가진 석장리 유적지와 그 유적들을 우리 공주에 사는 후예들이 잘 아끼고 보전하고 널리 홍보하여 현재 우리의 삶에 품격을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2014년은 공주에서 우리나라 구석기 발굴의 역사가 시작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즉 구석기 문화에 대한 발굴 연구가 시작된 지 반 백년이 되는 것이다. 이를 맞아 무령왕릉 못지않은 역사, 문화적인 공간인 석장리 박물관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찾아오며, 옛 생활을 체험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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