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성격의 도시다. 왜 그런가. 공주는 백제와 고려, 조선 시대 내내 중추적인 행정 도시였으며, 근대에 들어서도 오래 도청 소재지로서 지역의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이런 이유로 공주는 늘 권력을 산출하고 유지하는 현장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반면 권력이 있는 곳에 항상 존재하기 마련인 핍박당하던 사람들 또한 공주에 적잖게 있었을 것인데, 이들의 반체제적인 투쟁이 김헌창이나 망이 망소이 등의 역사적 사건으로 현실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공주는 권력의 차원에서 양면성을 갖고 있는 도시다. 

이런 현상은 인문, 문화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즉 공주의 문화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것과 새로운 것을 수용하여 변혁을 도모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흔히 양반도시 공주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전통적인 것을 고수하려는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행정 수부 도시였던 공주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문물이 가장 먼저 도착하고 활착을 시도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공주에서 천주교의 순교자가 많이 나온 사실이나 동학농민전쟁의 격전지가 되었던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렇게 이중적인 문화의 성격을 갖고 있는 공주에서 근대문학을 살필 때는 의아함을 넘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주의 근대문학의 출발점을 말할 때 예외 없이 해방 후 공주사대의 설립과 함께 그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단정의 근거는 거기 관련된 인물들의 증언이나 활동 결과물이며, 현존 자료들이 그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고 있어 꽤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이전에 공주에는 근대문학이 없었을까. 신식 교육을 담당하던 여러 학교의 교사들이나 서울에서 발간되던 일간 신문의 상주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던 공주에서, 특히 영화나 연극 등 여러 근대적 문화가 활발히 통용되던 상황에서 유독 문학만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필자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탐문하던 중에 1928년 공주에서 발행된 전문 문학 종합잡지 ‘백웅’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자료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워낙 희소한 잡지이다 보니 그 소장자를 알 수 없었고, 어렵게 수소문하여 소장자를 확인했어도 열람하는 일은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그러던 중 2011년에 연세대 도서관에 기증된 지 얼만 안 된 자료 가운데서 창간호를 구하여, 그 내용을 분석한 논문을 전국 규모 학회지에 발표했다. 그 작업 과정에서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었다는 기존 학자들의 소개와 달리 2호 잡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다행히도 웅진교육박물관을 운영하는 분이 그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금강뉴스’의 보도가 있었다. 현재는 강원도 영월로 이전된 초등교육박물관장 이재우 관장님과 연락이 닿아 고맙게도 2호 잡지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고, 금년 9월 그 내용을 분석한 학술 논문을 전국 규모 학회지에 발표할 수 있었다.

두 논문에서 밝힌 대로 이 잡지는 단순한 동인지가 아니다. 논문을 통해 이미 그 문학사적 의미와 가치를 살핀 바 있지만, 이 잡지는 우리 문단 초창기의 주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 공주(충남)의 근대문학 출발점을 앞당길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크다는 점, 중앙 집중의 문단 현실에서 지역 문학의 거점 내지 균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 등을 주요 의의로 꼽을 수 있다.

동시에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공주에서 근대문학에 대한 관심 자체가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시기에 이런 성향의 잡지가 발행될 있었던 사실은 공주의 근대를 더욱 풍요하게 만드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주에서 이 잡지가 발행될 수 있었던 데는 발행인 윤상갑, 인쇄인 배상인, 원고 수집과 편집을 담당한 윤귀영과 강운곡, 후원자 김종국 등을 비롯한 공주 유지 집단의 헌신적인 노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 분들에 대한 자료 발굴과 연구를 통해 공주의 자긍심을 높이고 근대를 풍요롭게 한 “백웅”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를 기념하는 사업이 전개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공주를 상징하는 곰 상을 여기저기 많이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흰곰(백웅)’을 공주 문화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일 또한 멋있는 일 아닌가. 이는 공주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