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920~30년대 소설을 소개합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풀이 죽은 상태로 두 손을 들고 복도에 서 있던 남자 아이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를 유난히 괴롭히던 같은 반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친구들과 고무줄넘기를 하고 있으면 고무줄을 끊어 달아나고, 다른 놀이도 훼방을 놓고 가곤 했습니다. 화가 난 저는 선생님께 일렀고 친구는 복도에서 반나절이나 벌을 섰지요.

그런데 그 친구가 마흔이 넘어 동창회에서 만났는데 그때 저를 좋아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짓궂게 했는데 남자 맘을 그렇게 모르냐, 고 핀잔을 주더군요. 세상에 기대도 야무져라, 어떻게 알겠어요.

동백꽃에 나오는 화자인 ‘나’가 꼭 저 같네요. 그래도 점순이는 감자라도 삶아서 가져 왔네요. 그런데 그 말이 문제지요. 그냥 줄 일이지 ‘너네 집에는 이거 없지’ 하고 줄 건 뭐 있어요. 이렇게 빈정대며 말을 하는 점순이의 마음을 어리숙한 ‘나’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어쩜 당연하겠지요.

두 사람의 갈등이 여기서 시작 됩니다. 점순이는 눈에서 눈물이 삐죽삐죽 납니다. 그 뒤 점순이는 비실비실한 ‘나’의 집 씨암탉과 자기네 집 튼실한 닭을 싸움을 붙입니다.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나’가 닭이 걱정되어 일찍 내려옵니다.

그런데 ‘나’가 내려올 길목에서 점순이가 또 닭싸움을 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닭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요. 그것을 본 ‘나’는 점순이네 닭을 후려쳐 죽입니다. 그런데 ‘나’는 겁이 덜컥 납니다. ‘나’ 의 집은 점순이네 집의 소작농이었기 때문에 땅을 뺏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점순이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점순이는 ‘나’에게 다시는 안 그럴거지, 하고 말하지요. 그 때 무엇에 밀렸는지 아님 점순이가 일부러 그랬는지 점순이가 ‘나’ 쪽으로 넘어져 둘은 동백나무 밑으로 쓰러집니다.

그때 알 수 없는 동백꽃의 알싸한 향기가 ‘나’의 코끝으로 스밉니다. 그것은 처음으로 가까이서 맡아보는 여자의 체취가 포함 된 것이겠지요.

동백꽃은 어리숙한 ‘나’와 ‘나’보다는 성숙하지만 순박하기 짝이 없어 자신의 마음 표현에 미숙한 점순이, 두 사람이 벌이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사랑이 해학적이고 토속적으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강원도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서 표준어로는 실감나지 않는 생동감이 넘치지요.

‘동백꽃’은 1930년대에 쓰여졌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는 그 시절의 글들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재미도 없고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그것은 그 시절의 관습이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순이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느냐고 저한테 묻는 것이지요. 요즘 같으면 ‘나 너 좋아해. 사귀자’,라고 한다더군요.

실제로 제가 몇몇 여자 아이들한테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고 물었더니 그렇게 할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30년대와 지금은 정서가 다른 것이지요. 또 마름과 소작농의 관계를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나긴 시대의 소설이나 다른 글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만 그 시절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일제시대라면 핍박받고 궁핍한 생활을 했을 텐데 이 글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읽혀지지 않았나요. 같은 시기에 쓰여진 글들은 보면 가난 때문에 또는 마름의 횡포에 인간성마저 상실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아마 ‘동백꽃’의 점순이네는 그렇게 나쁜 마름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린 소년 소녀의 시각에서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소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과연 둘은 맺어질 수 있을까요? 아님 점순이가 울면서 다른 동네로 시집가는 것을 지켜봐야 할까요? 아님 ‘나’가 도시로 나가 성공해서 돌아와 점순이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할라나요. 저는 참 궁금합니다.

마름의 딸과 소작농의 아들이 맺어지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여러분이 뒷이야기를 써 보세요. 앞에서처럼 경험을 넣어 보는 것도 괜찮구요.

아 참, 여기에 나오는 동백꽃은 사철나무처럼 생긴 잎에다 빨간 큰 꽃이 피는 그 동백이 아니랍니다. 이른 봄에 산에서 잔잔하게 피는 노란 꽃이 랍니다. 생강나무라고도 하고요. 산동백이라고도 한답니다. 향기가 아주 좋아요. 이것을 잘 못 알고 읽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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