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 1890, Oil on canvas 73.5 x 92 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사랑하는 어머니께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1890, 2.15 빈센트 올림

사랑하는 조카의 탄생에 복을 비는 고흐의 마음이 가득담긴, 고흐의 그림 중에 포근하고 화사하며 따뜻한, 동양의 길상도 같은 그림이다.

지금처럼 화창한 봄날 따뜻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아몬드나무는 성경과 그리스신화에도 등장하는 나무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데모폰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다. 데모폰은 아테네로 돌아가던 중 트라키아에 들르게 되고, 필리스 공주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약속한 데모폰은 한 달 후 돌아오겠다며 아테네로 떠난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데모폰을 기다리다 지친 필리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요즘처럼 휴대폰으로 연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던 시절이니 일어난 사건이다.

이를 가엾게 여긴 아테네 여신이 필리스를 아몬드나무가 되게 했다. 하지만 상심한 필리스의 아몬드나무는 잎도 나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다. 한발 늦은 데모폰이 필리스가 죽었다는 소식에 놀라 나무를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하자 나뭇잎이 나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아몬드나무는 연인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 필리스의 용서의 상징이 되었다.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봄의 선구자로서, 마치 부활을 상징하듯 죽어 있는 듯 메마른 나무 가지에서 잎이 돋아나기 전에 피어나는 아몬드꽃은 이른 봄에 처음으로 피는 매화와 닮았다.

기대, 희망, 진실한 사랑이 꽃말인 아몬드 나무는 기원전 2,3천년 청동기시대부터 재배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의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도 아몬드열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미목, 장미과(학명:Prunus amygdalus)인 아몬드나무는 인도 북부에서 시리아, 이스라엘, 터키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를 따라 북아프리카와 남부유럽으로 퍼져나갔고 근대에 이르러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장미과인 복숭아꽃, 살구꽃과 비슷한 모양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노래, 고향의 봄에 복숭아꽃 살구꽃……처럼 이스라엘마을에 아몬드 나무가 지천이라는 어느 신부님의 글이 생각난다. 예전에 우리 집이나 마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복숭아꽃 살구꽃나무처럼 아몬드꽃나무는 고흐가 살던 남프랑스에도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꽃이 피는 생명의 상징이었다.

고흐는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 조카에게 기대와 희망과 사랑을 담아 밤하늘에 별을 그려 넣듯이 아몬드 나무에 꽃을 가득 그려 넣었다.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꽃이 피는 4월, 우리 마음속에도 사랑과 용서로 아몬드꽃을 피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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