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삼월의 첫 주는 놀람과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공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한지 두 달이 채 안되어서 돌아간 김호철 경무관의 소식이 그것입니다.

김 서장은 부임하고 나서 두 달여 동안 자신이 가진 최선의 역량을 다하여 공주경찰서 경찰관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대민봉사와 치안활동에 전념을 다해줄 것을 부탁하고 몸소 일선에서 직접 진두지휘도 하면서 주야를 가릴 것 없이 사건사고나 업무를 보고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명쾌하게 처리해 나가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세간에서는 이구동성 말하고 있습니다.

공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주로 경찰청에서 주요 업무를 기획하고 청장을 보좌하는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혁신기획단에 들어가서는 경찰관들이 근무 중에 뜻밖의 사고나 순직으로 인하여 생계가 곤란해진 유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데 애를 써서 '참수리 봉사단'이라는 재단법인을 만들어 내는데 공헌을 하였으며 짧은 기간 동안 제주 경찰청 청문감사관실에 내려가 있다가 공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하였으니 그의 제2의 고향 공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에도 지휘관은 위수지구를 벗어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신념 아래 두 달여 동안 서울 집에도 다녀오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받으면 즉시 복귀할 수 있는 자세로 근무를 하였고 돌아가기 이틀 전에서야 아들 보현군의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한번 다녀 가달라는 부인의 부탁에 하루를 짬 내어 다녀 온 그날 밤 열두시 반까지 업무지시를 하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하였으니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더해가기만 합니다.

충남지방경찰청 장으로 진행된 영결식 날 공주사대부고 울림불교 학생회 4회 회장이었던 인연으로 종교의식을 의뢰받고 염불과 독경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의미 있는 종교의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김호철 서장이 30여세 때에 자신의 구도기를 지은 ‘친구여 우리 붓다가 되자’라는 책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였습니다.

언제나 미소 지으며 자신감이 넘쳐 보이던 김호철 서장은 경무관으로 일계급 특진되었고 영결식장에 오신 여러 경찰관들과 유가족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슬퍼하시지 말라. 삶은 무상한 것이니 진실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자’ 며 오히려 위로하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나는 독경대신 김 서장이 지은 책을 소개하겠노라 양해를 구하고 책 표지에 실린 글을 담담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누가 나에게 직업을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경찰관이라고 대답한다. 경찰은 진실을 찾는 직업이다. 누가 범인이고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등등의 진실을 찾는 것이 바로 수사다. 그래서 나는 경찰관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또 누가 나에게 종교를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불교라고 말한다. 불교 또한 진실을 찾는 종교다. 인간의 생·노·병·사는 왜 생기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뛰어넘을까 노력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그래서 나는  불교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진실 그것은 우리를 감격하게 하고 또 우리는 그것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닌가. 진실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 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또 책을 여는 자리에 적은 ‘그대를 위한 서시’라는 제목의 시도 함께 읽었습니다.

“친구여
시대의 소란으로부터
그대의 눈과 귀를 돌리게
그대의 마음이 청정하기 전에
이 세상의 아픔은 치유될 수 없나니
그대 먼저 마음을 청정하게 하게나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이 청정해지나니
그대
세상이 자네를 부를 때
기꺼이 자네를 불사르게나”

마치 법구경이나 잠언 한 구절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김 서장이 남긴 글귀는 모두에게 다가갔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지은 시대로 마음을 맑히는 수행을 먼저 하고 나서 세상을 맑히는 일에 힘썼으며 세상이 그를 불러서 요직을 맡겼을 때 자기 자신을 불꽃처럼 살다가 돌아가 버린 것이었으니 어떤 분은 시를 들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하였다 합니다.

자신이 경찰관이 되어 일선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면밀히 관찰하고 해결해내는 방식으로 쓴 체험 사례 열 네 가지와 더불어 53편으로 나누어 인생에 대하여 학문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사구게송의 형식을 빌어 쓰여진 글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내용이니 30여세의 젊은이가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인 까닭에 전생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부여 도천사지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책을 마치는 마지막 장에 ‘석별의 시’를 하나 남겨두었는데 제목은 ‘친구야 우리 부처님이 되자’입니다

"여보게 친구
소식 들었나
나, 부처되기로 작심했네
웃지 말게나 왕후장상의 씨가 본래 없듯이
부처가 될 사람도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네
마찬가지네
한 방울의 물은 모여 큰 바다가 되고
한 개의 티끌은 쌓이고 쌓여 태산을 이룬다네
부처가 되는 길 멀고 험해도
한 마음 먹는 것부터 시작이라네
우리처럼 사람 몸 받은 것이 참으로 얼마만인가
사람 몸 받고서도 부처가 못된다면 얼마나 한탄스러운가
친구야
우리 부처님 되자
너도 부처님
나도 부처님
우리 모두 부처님 되자
세세생생 우리가 모두 부처가 될 때까지
끌어주고 밀어주자. 응!"

나는 이런 글과 내용을 소개하며 삼십여 세에 마음으로는 이미 출가를 해버린 구도자로써 또한 포교사로써의 김호철 서장은 경찰관의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녀간 부처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유가족들은 장례절차를 정중히 마치고 매주 일요일 위패를 모시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잠시 극락세계에 쉬시다가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크나큰 원력 다시 이어 나가기를 발원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식에 믿겨지지 않아 하늘이 무너지는듯 슬퍼하였던 가족들 역시 이 같은 책의 내용 소개를 통해서 부처가 되자 역설하였던 김 서장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담담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며 아들과 남편과 형제와 아버지로 살아왔던 지난날을 그리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3월 1일 밤과 2일 가족들과 사진을 살펴보는 등 가장으로서 마지막 사랑을 보이고 부인에게는 “수고한다. 고맙다” 말했다는 김 서장은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들에게 “장차 무엇을 할래”하고 묻고는 “경찰대학을 가면 좋겠다”하였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 보현군은 “예, 그리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니 대를 이어 훌륭한 경찰관이 나올 것입니다.

4월 20일 일요일 원효사에서 봉행하는 49재에는 김호철 서장이 지은 ‘친구여 우리 붓다가 되자’라는 책을 700여권 다시 만들어 부처님 전에 법공양 올리고 김호철 서장이 근무했던 공주경찰서와 김 서장을 사랑했던 동문 등 많은 분들과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지면을 빌어 이번 영결식을 주관하시는데 최선을 다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마음을 모아주신 공주경찰서 경찰관들과 충남경찰청장님 그리고 청와대에서 화환과 금일봉을 전해주시고 애도를 표해주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 분들 또 김호철 서장이 경찰대학 재학 이후에 다녔던 인연으로 먼 길 오셔서 독경해주신 이천 영월암과 여주 신륵사 스님 등 여러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 사서실장 심경스님, 경찰청 경승 정범스님 외에 공주사암연합회 여러 스님들 및 슬픔을 함께 해주신 조문객들께도 유가족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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