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색부귀 國色富貴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987)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
그곳 모란이 활짝 핀 곳에
영랑이 숨쉬고 있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
그곳 백제의 향기 서린곳
영랑이 살았던 강진
음악이 흐르는 그의 글에
아 내마음 담고 심어라
높푸른 하늘이 있는 그곳
아 영원히 남으리
영랑과 강진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찬란한 슬픔의 봄을

사랑이 넘치는 그의 글에
아 내마음 담고 싶어라
애달픈 곡조가 흐르는 곳
아 영원히 남으리 영랑과 강진
 
<영랑과 강진>  김종률, 정권수, 박미희 (79 MBC 대학가요제 은상)

가요보다는 팝송을 많이 듣던 70년대 후반에 대학가요제는 요즘의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만큼이나 젊은이에게 인기가 있었다.

대학가요제 테이프와 엘피판을 사서 모았고,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며 녹음준비를 하고 음악방송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에 김영랑의 시로 만든 이 노래를 매우 새롭게 들었다.

조국의 아픔을 드러내고자했던 시인의 의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나의 청년기로 생각하며 흥얼거렸고 지금도 가끔 기억을 더듬어 불러보곤 한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가곤했던 외갓집, 뒷마당에 자태를 뽐내며 소담스럽게 핀 꽃, 대청마루 한켠에 있는 뒤주 위에 놓여있던 푸른 꽃이 그려진 항아리, 가끔 달콤한 꿀을 맛볼 때 열리는 안방의 벽장문에 그려진 붉은 꽃, 엄마가 시집 올 때 해온 포근한 목화이불에 꽃 수, 뒷날 기억해보니 모두 모란꽃 그림이었다. 옛 사람들은 모란그림을 가까이 두고 풍성한 모란

꽃처럼 살고 싶어 했다. 내가 전통혼례를 치를 때 마당에 쳤던 모란 병풍, 모란도 병풍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랑 각시의 장래가 모란꽃처럼 부귀롭고 풍족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예전에 흔하게 볼 수 있던 모란 그림들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남농은 국색부귀, 부귀를 상징하는 나라 안의 첫째 꽃이라고 풍성한 모란꽃을 그렸다. 며칠 전 모란 두 그루를 가져다 마당에 심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은 당나라 태종이 보낸 모란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향기가 있다고 말한다. 나도 모란의 향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년에 마당에 모란 이 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강판권은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꽃향기는 진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물론 향기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식물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꽃피우고, 향기도 생존을 위해 짙게 혹은 없게 한다.

탐스럽고 화려한 모란에 향기는 없어도 그만 아닌가?
여러분도 활짝 핀 모란에 코를 가까이 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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