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들이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교수님들을 초대하는 등 조촐한 스승의 날 행사를 치러왔다.

얼마 전까지는 학생들이 정성껏 만든 음식을 차려놓고 선생님들을 대접하였는데, 근래에는 대개의 경우 학교 인근의 음식점으로 행사 장소를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생들이 만든 음식이면 어떻고, 사 주는 음식이면 어떤가. 모처럼 교수와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덕담도 나눌 수 있으니 고맙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스승의 날이 고맙고 흐뭇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학생들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줄 때가 제일 그렇다. 그래서 번번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학생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노래를 음미하는 척 눈을 지그시 감고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가사처럼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었는지 또는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보살피기는 한 것인지 반성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런 것이 스승의 날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학생들은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고마운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의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과연 그 일에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지 반성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1958년 강경여고 학생들이 선생님께 보은(報恩)의 마음을 전하던 때부터 유래된 스승의 날이 오래도록 지속된 것은 그 의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스승의 날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용돈도 넉넉하지 못한 학생들로부터 밥과 선물을 받는 것이 미안하니 행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용돈을 아껴주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작은 이익에 홀려 헤아릴 수 없이 큰 가치를 놓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표하려는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소중한 가르침의 한 장면이다.

자칫,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몇 푼의 금전으로 계산하는 결과가 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의 날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하는 교육의 장인만큼 ‘교육’의 관점에서 보아야지 ‘경제’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서는 안 될 것이다.

근자에 학교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도(師道)가 추락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른 요즘 세태가 답답하기만 하다. 올해는 우리 학과도 스승의 날 행사를 취소하였다.

세월호 침몰과 같은 국난(國難)을 당하여 자숙하는 의미에서 취소한 것이라 하니, 스승의 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는 다른 이유이기는 하다. 요즘과 같은 시국에 왜 취소했냐고 토를 달 여유도 없는 이유가 아닌가. 그렇다고는 해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스승의 날이 가지는 교육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재규 교수가 참신한 제안을 한다. 스승의 날은 사정이야 어떻든 한쪽에 치우치는 느낌이 있으니 차라리 ‘사제동행의 날’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과연 그럴 듯하다. 이 교수의 탁월한 제안으로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다. 내년에는 ‘스승의 날’이라 쓰고 ‘사제동행의 날’이라고 읽는 스승의 날 행사를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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