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평공 도조제(陶祖祭) 참관기

공주에서 이삼평(李參平)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전으로 가는 박정자 삼거리 야산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지만 오늘날 차를 이용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기 바쁜 곳으로 나무에 가려진 이삼평 기념비는 오늘도 외롭게 서 있다. 

그렇잖아도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타국에서 고향 공주를 그리워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그를 우리는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홀대하고 있다.

▲ 이삼평 도조제에서 추모사를 낭독하는 한국도자문화협회 오유근 회장. 이삼평 도조비 옆에 태극기가 인상적이다.

이삼평 도조비 양쪽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일본 사가현 아리타 도자기축제는 매년 이삼평 도조제(5월 4일)가 거행되는 날을 중심으로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아리타 전 지역에서 열린다.

사가현 아리타 마을에는 아리타 도자기의 여명을 연 도공 이삼평을 추모하는 도산신사(陶山神社)가 있고 아리타 사람들은 이삼평이 가마를 개화한지 300년이 되는 1916년, 아리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산신사(陶山神社) 뒷산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아리타에서는 1917년부터 도조제(陶祖祭)와 함께 도자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

▲ 이삼평 도조제를 마친 후 이삼평 14대 후손 가네가에 쇼헤이씨와 기념촬영을 하는 이삼평연구회 윤용혁 교수와 이재황 도예가

지난 5월1일부터 4일까지 이삼평연구회(윤용혁 부회장, 신용희 부회장, 이재황 사무국장)회원 세사람이 한국도자문화협회와 함께 도조제에 참가하기 위해 아리타를 다녀왔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도자기업계가 주목하는 아리타 도자기축제를 보고자 함도 물론이다.

도자기축제가 막바지에 이르는 5월 4일 아리타시 관계자와 한국도자문화협회원(17명)과 함께 도자신사를 찾았다. 간단하게 예를 올리고 신사 바로 뒤에 있는  도조비를 향했다.

아리타 시장과 이삼평 14대손 가네가에 쇼헤이씨를 비롯한 관계자와 한국에서 참가한 한국도자문화협회와 이삼평연구회 일행은 사뭇 엄숙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제를 올렸다.

한국도자문화협회 오유근 회장은 추모사에서 “李公이 꿈에도 잊지 못하시던 고향 산천 공주에 우뚝선 아리타주민 출원의 이공기념비도 설립 23주년을 맞이하여 이제 국내외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아리타정과 우리 한국의 도자기술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위대한 李公의 개척창조정신을 계승하여 새로운 도자기술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국제친선, 특히 한일친선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할 것을 경건하게 다짐합니다”라며 이삼평공을 추모했다.

▲ 이삼평 도조제에서 신녀들이 제례의식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중 하나는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감동이 제일 빠를 것 같다.  

매년 무령왕축제(6월 초)를 주관하면서 가끔 아리타를 들러 이삼평 묘에 계룡백일주로 술잔을 올리면서 이삼평 도공이 우리 공주 출신임을자랑스러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고난했던 삶을 조금 반추해 보기도 했었다.

정작 우리는 홀대하는 이름없는 도공을 아리타에서는 도조로 모시면서 그가 이룩해 놓은 도자 업적을 감사하면서  매년 그를 위해 제를 올리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늦었지만 2년 전 그를 기리기위해 ‘이삼평연구회’를 만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아리타 도자축제엔 자기, 자기만...

올해 7일간 개최한 아리타도자축제엔 130여만명이 다녀갔다. 축제가 아닌 평소에는 조용하기만 한 아리타 작은 마을에 하루 평균 19만여명이 도자기를 사러, 또는 도자기와 관련한 사람들이 온 것이다.

아리타 마을은 구로키 산이 분지를 이루며 길게 뻗어있는 곳으로 길도 좁아서 축제때는 차도 통행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양옆의 도자 가게 사이를 그야말로 사람들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이럴수가...

▲ 도자기 축제에는 도자기만 있다.

그리고 아리타 도자축제엔 도자기, 도자기만 있었다. 흥타령 엿장수도, 노래자랑도 없고 다만 도자기만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조용하게 도자기를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도자기를 사고, 쉬고...한쪽 야트막한 언덕에 마련한 도자기공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도자기 가마도 보고 체험도 하고 차도 한잔 마시며 축제를 조용히 즐기고 있다. 도자기와 관련없는 것은 이곳에선 볼 수가 없다.

그렇다. 도자기축제엔 도자기만 있어도 하루 19만명이 온다는 것을 아리타도자기축제는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이 이삼평공을 도조라 추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 아리따 하사미에 있는 세계도자가마공원

축제의 주제와 상관없이 우리의 축제는 먼저 무대부터 설치한다.  그다음 가수가 나오고 밴드가 나오고...
이제 우리도 축제 주제에 맞게 실속있는 축제를 치러보자.
 
이삼평은 누구?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아리타도기(有田燒)의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이삼평은 공주시 반포면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중 한 사람이다.

이삼평은 공주에서 도공으로 활동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조선도공 납치계획에 따라 1594년 또는 1596년 경 일본으로 끌려가 아리타에서  가마를 구워 처음으로 순백의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이삼평은 가나가에 산베이(金?江三兵衛)라는 일본 이름을 얻는데 그의 성(姓)은 출신지 공주의 금강(錦江)에서 한자를 바꾸고 ‘삼평’이라는 조선 이름의 발음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 이삼평 신사에 모셔진 이삼평 도자상

그의 도자기는 일본 전국으로 퍼져 이마리도기라는 별칭과 함께 명성을 떨쳤으며 그에 의한 아리타도기의 창시는 일본 도자기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자기질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아리타 지역은 일본 도자기의 성지(聖地)가 됐다.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는 지명을 따 아리타 야키로 이름 붙여졌으며 일본 전역과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 사가현 아리타 마을에는 이삼평이 발견한 백자광 이즈미산 굴 유적지와 이삼평 도산신사(陶山神社)가 있고 뒷산에는 기념비를 세웠으며 1917년부터 도조제(陶祖祭)와 함께 도자기축제가 열리고 있다.

특히 오는 2016년은 이삼평이 아리따에 가마를 개화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로 아리타 주민은 대대적인 도자기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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