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끄고 자려하니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
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달은 어여쁜 선녀같이
내 뜰 위에 찾아온다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밤을 이 한밤을  얘기하고 싶구나
……
<달밤>, 김태오 작사 / 나운영 작곡

▲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1957

뜨거운 햇살이 내리 쪼이는 한낮에 마을 안쪽에 있는 공동묘지를 향한다. 가끔 차가 다니는 조용한 마을길. 아리타 도자기의 원조라고 불리며 일본 도자기의 세계화에 기여한 조선의 도공 이삼평 어른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비스듬히 경사진 공동묘지를 오르니 이삼평의 묘비가 있다.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데려온 이삼평이 조선 도자기 장인들을 이끌었다는 것과 월창정심거사(月窓淨心居士) 란 묘비가 발견되어 이삼평의 무덤이라고 확인되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묘비를 보면서 김환기의 <달밤의 화실>이란 그림이 떠올랐다. 새가 날고 있는 하늘, 창밖에 둥근 달, 배를 연상시키는 주황색 커튼, 푸른색조의 그림에 주황색 커튼이 눈길을 끈다. 화실에는 그가 사랑하는 백자와 <항아리와 매화가지> 그림이 이젤에 놓여있다.

가로로 배치된 풍경이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세로선으로 표현된 창살이 멀리 떨어져 있는 화가의 고독함을 더 한다. 아마 김환기는 파리에서 주황색 배를 타고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고향 땅에 가는 꿈을 매일 밤마다 꾸었을 것이다.

김환기의 백자 사랑은 유명하다. 그의 화실에 한 벽면을 도자기로 채웠고 사진을 찍을 때도 도자기 앞에서 찍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에 백자시대를 처음 열었던 이삼평의 백자는 김환기와 4백년 세월을 넘어 서로 만나고 호흡하며 어우러지다가 마침내 그의 그림에서 생기를 찾고 되살아난다.

우리나라를 떠나 파리에서 일본에서 창밖에 걸린 달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보름달이 쌍달리 작업실 창에 걸려있다. 나는 월창(月窓) 이삼평, 수화(樹話) 김환기를 생각하며 달밤이라는 노래를 불러본다. 달은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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