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경장이라 하여 개혁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 아래 김홍집, 김윤식, 박정양, 유길준, 박영효 등이 뭉쳐서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 노력하였던 해입니다.

당시의 정황으로는 나라의 정세가 외세 앞에서 풍전등화와도 같아서 오백년 사직이 일시에 무너져 내릴 지경에 이르게 되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등의 침략에 맞서고 서세동점의 사조 속에 명멸해가는 우리 민족의 혼을 살리고자 하는 자주 자립의 기치 아래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였던 선구적이자 자발적인 개혁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오경장도 동학농민전쟁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며 결국 1910년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식민 상태가 되어 36년의 무단통치가 시작되니 참으로 우리 근대사에 있어서 씻어내기 어려운 마음 아픈 역사가 펼쳐진 것입니다.

일갑자를 두 번 넘는 해인 올해 갑오년, 1973년에 동학농민전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우금티 전적지의 탑에 새겨진 비문을 한번 살펴보시고 당시의 상황과 오늘을 생각해 보시자는 의미로 비문을 올립니다.

우금치(티) 비문 앞면 내용

인내천과 사민평등의 종지아래 후천개벽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하고 동학교주 전봉준이 호남의 만석보 기슭에서 수천의 농민군을 편성하여 첫 봉화를 든 것은 갑오(서기 1894년) 정월 10일, 20일께는 다시 대거하여 백산을 점거하고 습격해오는 관군을 격파하면서 승승장구. 4월말에는 전주성까지 함락하게 되니 혁명의 성공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청일 양국의 무력간섭 아래 이 나라의 국권마저 위협받게 되자 정부 측이 먼저 화해하기를 청하니 우국애민의 일념에서 동학군은 마침내 양보하여 전주성을 내어주고 그 여력을 지방 조직에만 기울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국주의 일제의 엄청난 야욕은 돌연 남의 나라 주권을 침해 독점하고자 날뛰게 되니 정녕 국가의 명맥이 통틀어 풍전등화가 되고 말았다.

이에 한동안 후퇴했던 동학군은 드디어 항일 구국의 독립군으로 재무장하고 총궐기하였다. 남북접이 호응 합세하여 20만의 대병력을 논산평야로 집결시키고, 전봉준과 손병희 두 통령의 작전지휘아래 서울까지 진격하는 주요거점으로 공주성부터 공략하게 되었다.

그 결과 10월 하순부터 전개된 공주성의 대공방전은 이 우금치(티)를 중심으로 날이 갈수록 처참하고 가열하게 됐다. 한 고지의 주인을 4.50차례나 바꾸어 가면서 세계전사에 유례없는 격전을 되풀이하였다.

그리하다가 새로 투입된 일본군의 증원부대가 근대의 무서운 살인무기 기관총으로 연속 맹사격을 퍼 붓게 되니 악전고투하기 3일 만에 동학군은 막대한 희생자를 내인 채 전우들의 시산혈하를 넘어서 11월 11일 논산방면으로 철수하였다.

대망의 혁명 사업이 여기서 좌절당하고 계속되는 추격과 살육 속에 위국단침조차 알아줄 이 없었다. 그러나 님들이 가신지 80년 .5.16 혁명 이래의 신생조국이 새삼 동학혁명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빛나는 시월 유신의 한 돌을 보내게 된 만큼 우리 모두가 피어린 이 언덕에 잠든 그 님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이 탑을 세우노니 오가는 천만대의 후손들이여 그 위대한 혁명정신을 영원무궁토록 이어받아 힘차게 선양하라.

서기 1973년 11월 11일

동학혁명 일어난 지 올해로 일백 이십 년이 되는 해에 이제는 나라 개혁의 원력을 품고 일어났다가 성취하지 못하고 기관총 탄환 앞에 스러져 갔던 저 영혼들을 위하여 우리가 무언가를 해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은 혁명탑 주변을 정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훼손된 탑비도 고쳐가며 주변에 동학혁명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을 하나 짓고 찾아오는 많은 순례객들에게 국민 교육의 현장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입니다. 요즘도 하루에 한 두 차례 대형버스가 우금티를 향해 올라갑니다.

차에서 내린 학생들이나 순례객들은 덩그러니 서 있는 탑 이외에는 동학혁명에 대하여 보고 알고 기억할 수 있는 아무런 자료도 얻지 못하고 아 여기에 이런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이다 보니 우금티를 통하여 우리 역사가 보여주고 말해주는 내용을 하나도 알지 못한 채 사진하나 달랑 찍고 차에 올라 돌아가 버리는 형국입니다.

왜 우리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이라는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민중의 함성이 모여서 이룩한 국가를 혁신하고 국민들을 일깨울 수 있는 교육과 역사의 현장 앞에서 우리는 무한한 부끄러움과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건만 아직도 이 나라는 미망에 둘러싸인 채 고통 속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120년 전에 비하면 120년 후의 우리들이 사는 여건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의식주에 있어서의 변화 이외에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하고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이 나라 정치 경제와 사농공상 및 교육계와 종교계의 도덕적 해이나 국가관의 문란함이 극에 달해있는 상황입니다.

공주 사람이라고 하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뜻있는 인사들과 함께 모여 우금티를 살아있는 민족의 성지로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해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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