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국(1916~2002, 한국 모더니즘의 제1세대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 캔버스에 유채, 73×91㎝, 1993년

화가를 꿈꾸던 소녀의 눈에 비친 작가들은 괴이한 기행을 일삼는 사람들이었다. 예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전기등을 보면 그들의 기이한 삶, 정신분열증 또는 편집증, 강박증 같은 것이 그들의 작품보다 더 부각되면서, 마치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런 것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이는 일반 대중들에게 모든 예술가는 괴이하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에 우월한 기럭지로 아줌마들의 마음을 훔쳐간 소설가 장재열(조인성), 그 또한 소년시기에 억눌려 있던 아픈 기억에서 얻게 된 스키조(정신분열증)로 시청자의 마음을 슬프게 했고, 드라마 작가 노희경은 시청자에게 정신병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기도 했다.

그런 기행과는 거리가 먼 유영국은, 흐트러짐 없는 성실한 태도로 수도자 같이 생활하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작품 활동 시간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부인 김기순씨는 2012년에 신문 인터뷰에서 “기계같이 그렸다.” 그는 오전 7시 반에 깨어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반에 화실로 건너가 그림을 그리고, 11시 40분쯤 나와 손 씻고, 12시 땡 치면 점심이 먹고, 오후 1시쯤 화실로 다시 건너가, 6시에 저녁 식사하러 나오고, 그 날 낮에 낭비한 시간만큼을 다시 화실로 돌아가 보충했다. “제 생활도 그에 맞춰 돌아갔죠. 지금은 구심점이 없으니 무위도식이죠. 식사 시간은 오랜 습관대로 그때와 똑같아요.”화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나도 이런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 꿈을 꾸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살림을 하는 여성 작가들이 한번쯤 상상하는 일이다.
 
“내가 대상으로 한 것은 자연이었고, 그것을 탐구해온 형태는 비구상을 바탕으로 한, 즉 추상이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들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선이나 면이나 색채 그리고 그런 선과 면과 색 작품 채들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의 자연이다.

화가가 자신이 보고 느끼고 나서 생각하는 자연, 그것은 단순히 보이는 구체적 그대로의 자연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그런 자연의 형태를 떠나서 선과 면과 색채로써 화면(캔버스)에 더 주관적으로 탐구되는 나의 자연, 나의 자연의 형태에의 탐구이다.……” (이흥우, 「劉永國 - 원숙의 서정성」. 《화랑》, 1980, 여름호)

유영국의 자연은 그의 고향 울진의 산과 바다였고 그것을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으로 풀어냈다.

선주의 아들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고향에서 선원들과 배를 몰아 고기를 잡기도 했고, 양조장을 하며 소주를 만들어 팔았다. 직접 라벨을 디자인한 ‘망향’ 소주는 고향 잃은 이들이 많던 당시 인기를 끌었다.‘고 아내는 기억한다.

양조장과 화가, 술을 즐기는 식구를 둔 나로서는 인상적이다. 술 담그는 구경 한번 못해 본 내가 작년부터 틈틈이 전통주 강의를 들으며 술을 빚다 보니, 이제 제법 술맛을 내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맛을 보이고 있다.

양조장은 아니더라도 집안에서 꽤 향기로운 술을 빚어 내 그림과 술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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