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이 어질면 그런 마을이 바로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러니 어진 마을을 택해서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논어 이인편(里仁篇)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니 어김이 없을 것이다.

굳이 ‘공자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마을이 아름다운 마을일까?

우선 자연풍광이 수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풍광이 수려해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이 조야(粗野)하다면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고장 사람들의 풍속이 바르고 넉넉하면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기에 충분한가?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리 풍속이 좋다고 해도 경관이 빼어나지 못하면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지금 나는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희망처럼 누구나 다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다면,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와 같은 저술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살만한 곳’이 그리 흔치 않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던 책이다.

이중환은 조선 천하를 두루 섭렵한 뒤에 ‘살만한 곳’으로 몇 군데를 지목하고 있다. 아마 공주 일대도 그 중에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

어쨌든, 우리가 아름다운 고장에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환경이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잡은 다음 그러한 경관을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선택한 곳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면,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가꾸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수려한 경관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척박한 환경을 가꾸고 다듬는 것이 바로 ‘공자님 말씀’대로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는 어진 사람의 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진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대학 또는 우리 고장 공주의 자연조건의 호불호(好不好)야 어떻든 우리 대학과 고장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다. 올해 봄부터 사범대학 행정실 직원들과 같이 매주 금요일에는 학내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일을 시작하였다.

‘깨끗한 환경 상쾌한 마음 명랑한 생활’이라는 소박한 생활신조를 실천하는 것일 따름이다. 조금 확대해서 말한다면, 우리 학교 나아가 우리 고장 공주의 아름다운 환경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한 두 사람이 쓰레기를 줍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우리 주변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일은 앞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작은 일이라고 얕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큰 강도 시작은 작은 샘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겠는가!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낳을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다져본다.

벌써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부서의 직원들과 학생들까지 쓰레기 줍는 일에 동참하거나 동참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성급한 욕심일 수도 있으나, 편백나무 숲에 산책을 즐기는 공주시민들까지 쓰레기봉투를 들고 오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 대학 나아가 공주시가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되기를 꿈꾼다. 우리 대학과 공주시가 풍광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서 더 아름다운 대학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되는 꿈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싶다.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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