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14일, 인구 13만 소도시에서는 처음으로 제21회 전국연극제가 공주문예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그 열기가 뜨겁던 초여름 날 의당면 청룡리 소재 공주민속극박물관에서는 1400여 년 전 백제시대 이 땅위에서 펼쳐졌던 백제기악이라는 탈놀이를 가지고 심포지엄이 열렸다.

물론 이 오래된 탈놀이에 대하여 그동안 여러 석학들의 연구결과와 논문 발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합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전국연극제의 후원으로 한·중·일 3개국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제심포지엄을 열었으니 그 의미는 실로 남달랐다.

특히 그날 모임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백제기악의 역사성이나 일본에의 전래 과정뿐만이 아니라 탈, 춤, 의상, 악기, 음악, 연희본 등 탈놀이에 필요한 각 장르의 기본적인 연구결과를 통하여 오늘 우리가 재창조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같은 해 2003년, 일본 천리대 아악부의 공연 관람을 시작으로 공주 연극인들 중심의 백제기악전승보존회가 창립되었고 지역 공연예술인들과의 연대를 이루어가며 다양한 형태의 백제기악 탈놀이 공연이 매년 만들어 지고 있다.

이렇듯 지역예술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백제기악공연은 2008년 유럽무대와 2010년 일본 나라현 아스카 고겐지에서의 공연으로 그 외형을 확장해 나갔지만 정작 지역에서의 관심과 주목은 노력에 비하면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나는 요즘 10년 넘게 백제기악 공연을 만들면서 공연자로서의 시각, 즉 대사가 없는 무언극 형태의 탈놀이를 어떻게 재미있는 공연물로 만들까하는 직업적 관념에서만 노력을 하는 사이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평소 백제기악을 만들면서 왜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왜 공주시민들은 우리지역의 소중한 공연문화예술인 백제기악에 대하여 관심이 없을까?

나름대로 불평을 독백처럼 늘어놓다가 백제대향로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1993년 12월 23일 백제금동대향로가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그때 발굴소식을 접한 그 날부터 나는 6개월 동안 실측도와 발굴사진만으로 모형물 제작을 시작하였고 유물이 약물 보존 처리 때문에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음에도 절반크기의 백제금동대향로 복제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때 작업과정을 공부하면서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 조각들을 보고 나는 느꼈다. 백제인들은 코스모폴리탄이다… 즉, 신비한 우주관을 가지고 있는 멋진 민족이었다는 것을...

이렇듯 정신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조형물에 대한 감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덕에 나는 ‘천도헌향가’라는 백제금동대향로 이야기를 공연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백제기악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연의 내용과 오락성 또는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왜 그 당시 백제의 탈에서 코가 큰 서역인들의 모습이 보이는지’, ‘불교문화의 일본 전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1400년 전 동아시아 문화교류에서 우리 백제인들의 위상은 어땠는지’ 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시민들 사이에서 먼저 확산되어야만 공연물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게 될 것이다.

근래에 들어 공주고도육성주민협의회에서는 시민들이 주축이 된 백제기악단을 만들어 백제문화에 대한 공부와 백제기악에 대한 실연까지 염두에 두고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큰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과분하게도 필자에게 특강요청이 있어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참석한 분들의 열의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체계적인 계획을 준비하는 조직원들의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이 매우 돋보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지금까지의 예술가 중심의 문화예술이 이제는 예술인과 시민이 함께 이해하면서 공존하는 지역문화 시스템으로 발전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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