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캔버스에 유채, 64×80.5㎝, 1888, 크뢸러밀러미술관, 네덜란드
봄이 시작된다는 첫 번째 절기인 입춘, 농부는 농기구를 손질하며 거름을 뒤적이고 겨우내 잠들어 있던 대지는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편다.

눈이 비로 변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우수, 잠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지나면 시골마을이 깨어난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던 겨울, 마을 회관에 모여 난방비를 아끼며 추운겨울을 지내던 마을 사람들이 들로 산으로 나와서 경운기소리까지 왁자지껄하다.

이쯤 되면 덩달아 나도 바빠진다. 마을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시간을 넉넉히 잡아 출발하지 않으면 약속시간에 늦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테오여, 따뜻하고 밝은 아를르로 나는 왔다. 태양과 빛과, 풍물(風物)의 색(色)과, 흙냄새 속에 나는 서 있다. 그렇다. 볼테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벌써 목이 마르다고 한 빛나는 태양의 빛이 황홀하다. 이곳은 농사짓는 벌판이나 마을의 술집도 북부 프랑스처럼 나른해 보이지도 않고, 비극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따뜻함이 가난의 쓰라림과 우울함을 녹여주고 덜어준다.’

고흐가 프랑스의 남부 아를르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따뜻함, 햇빛, 색, 흙냄새…봄, 이런 것에서 사람은 위안을 받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플로방스 지방에 있는 아를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고흐는 따뜻함을 느꼈다.

거칠게 쟁기질을 한 밭에 한 사람이 씩씩하게 팔을 휘두르며 씨를 뿌린다. 그 뒤에는 멀리 노란 밀밭이 보이고 밀밭 너머에는 강렬한 태양이 빛을 뿜고 있다. 아폴론의 수레가 마치 대지와 인간을 삼켜 버릴 것 만 같다. 보라색, 파란색이 어우러져 있는 밭과 노란색 밀밭과 하늘이 강하게 대비된다.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을 여러 장 그렸는데 밀레의 그림 ‘씨 뿌리는 사람’이 그의 그림의 원본이라 할 수 있다. 고흐는 원화를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니고 판화나 인쇄물을 보고 그렸다.

밀레는 고흐가 사랑하고 존경한 화가였다. 그의 삶과 그림은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요즘씩으로 멘토, 롤 모델 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를 떠나 바르비종으로 간 밀레는 그 당시 화가들이 그리지 않았던 가난한 노동자와 농부의 삶을 그림으로 그렸고 종교와 신앙심이 배어 있었다.

동양화나 서예의 임모, 임서는 옛 그림이나 글씨를 보고 필법과 서체, 그린 사람의 정신을 담아내는 공부 방법이고, 소설가나 글 쓰는 사람들은 필사를 하는 글쓰기 공부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한자 한자 적을 때는 그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다른 작가의 재능이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자신의 작품에 넣는,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 존경을 의미하는 오마쥬(hommage)도 있다.

고흐의 씨뿌리는 사람은 밀레에 대한 임모, 필사이며 오마쥬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미술실에서 고흐 화집을 보고 따라 그렸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많은 화가 지망생들이 고흐가 했던 것처럼 또 내가 했던 것처럼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리기도하고 그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가 살았던 곳을 찾아가 숨결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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