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 서라벌의 원효 스님은 화엄 종주 혹은 화엄 강사라 불릴 만큼 신라 불교계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고 스님들이 계를 받고 스님이 되면 먼저 공부를 하는 초발심자경문 가운데 발심하여 수행하라 하는 발심수행장이란 명문장을 지은 분입니다.

요석궁의 요석 공주와의 만남 이후 스스로를 복성 거사 혹은 소성 거사라 칭하며 거렁뱅이로 이류중행을 하면서 비로소 신라 고유의 풍류도의 진면목도 체험하고 절에서 머무르며 수행할 때는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였던 중생의 고통과 직면하였으며 나아가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마을에 이르러 죽음을 마주하면서 도망치지 않고 중생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사지에서 오히려 큰 공부를 이루고 한철 겨울을 나고자 찾아간 곳이 감천사라는 절입니다.

스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절집의 허드렛일인 부목과 밥 짓는 공양주 자리를 자청하고 겨우내 대중들을 위해 공양을 지어 드리고 나무를 하고 불을 때는 불목하니를 하는데 독성각에 계신 방울 스님이란 노장님이 종종 후원에 내려와 누룽지를 얻어 갑니다.

그분 역시 자신을 숨기고 사시는 도인으로 대안대사와 같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 온 고승으로 스님은 원효스님을 한눈에 알아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아니하면서 서서히 원효스님에게 자신의 법을 전하여 주십니다.

어느 날 방울 스님은 원효대사에게 “내가 우스갯소리 하나 하리다” 하면서 “스님이 큰 방 옆을 지나오는데 절에 경을 공부하는 학인들이 모여 대사가 지으신 대승 기신론소를 공부하면서 원효대사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더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인들은 자신들이 원효대사가 지어 드리는 공양을 먹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으니 이 재미있는 일 아닌가 합니다.”

효사 역시 큰방에 학인들 소리가 궁금해 문밖에 가서 듣고 있어 보니 ‘원효 스님은 보살의 후신’이라느니 ‘무애행을 하고 있다’느니 ‘파계를 하고 사라졌다’느니 등등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가까이 계신 원효는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평이 난무합니다.

무릇 겨울 가고 봄이 오자 방울 스님 도움 아래 고총에서 깨달은 삼계유심 만법유식의 미진하였던 마음의 도리를 확실히 챙기고 원효대사는 다시 이류중행의 길을 떠나러 방울스님께 작별을 고하니 대사는 아무 말 없이 효사를 보내시다가 문득 “원효대사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무엇을 드리려다가 깜빡 하였소” 하는 소리에 대중들이 다들 놀라서 삼동 한철동안 자신들이 얻어먹은 밥이 화품 강사인 원효대사의 밥이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소얼 원효대사를 읽으며 참으로 재미가 소록소록 샘솟습니다. 게다가 저자인 춘원 이광수 선생의 해박한 신라 문물과 정신에 대한 소개 및 우리가 잊고 살아 온 고어에 대한 음운학적인 자세한 풀이는 국문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 보물이 넝쿨째 들어 있는 모습이라 생각하여 우리 님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글에 ‘거렁뱅이’라고 사용한 말도 지금은 우리가 그저 빌어먹는 거지 정도로 아는 말인데 거기에는 신라인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합니다.

‘거렁뱅이’는 원래 ‘거랑방이’라는 말로 거랑은 바람이요 방이란 당시 신라의 풍속 중에 방아 신을 섬기는 화랑이라는 말이어서 화랑들이 어느 정도 공부를 마치면 명산대천을 찾아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고 뜻과 절개를 다지며 무예를 익히는 등 하나의 공부의 수단이자 방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은 우리가 잘 아는 근세의 대강백이시자 역경원을 설치하시어 한문으로 된 팔만대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신 운허스님의 사촌 동생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봉선사에 잠시 머물면서 운허스님의 조언으로 불법에 맛을 들여 큰 조예가 있을 만큼 공부를 하였다 해서 그런지 소설 전반에 흐르는 불교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논리의 전개는 여간한 법사와 스님은 울고 갈 정도입니다.

춘원은 원효대사의 삶 가운데 뱀을 잡는 것으로 업을 삼고 사는 뱀복이와의 극적인 만남에 대하여도 논하고 있어서 흥미진진합니다.

뱀복이와 벗하고 돌아다니며 아미타불 염불하는 방법을 펴던 중에 뱀복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원효대사에게 시다림 염불 즉 사람이 돌아가면 스님들을 청해서 하는 염불을 해 달라 합니다.

대사가 시신을 앞에 모시고 염불을 하면서 말하기를 “영가시여 죽은 것이 고통이니 태어나지 말 것이요. 태어나는 것도 역시 고통이니 죽지 말 것 입니다” 하고 목탁을 두드리며 생사 법문을 하고 앉았으니 뱀복이가 말을 가로채고 나서서 “화엄종주가 어찌 그리 말이 많으신가. 그저 ‘생사고’ 즉 태어남과 죽음이 고통이다 라고만 하면 될 것”을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서라벌의 민초들조차 모두가 깨달음을 얻은 불보살의 화신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박으로 박자를 맞추고 무애무를 추시며 허랑한 광대 같은 모습으로 하층 민중들에게 불법의 가르침을 전하셨던 원효대사 가시고 천여 년이 흐른 뒤에 조선의 서산대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합니다.

태어남은 어디를 좆아 일어나고
죽음은 어디를 좆아 돌아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흩어짐이라.

뜬구름은 본디 실체가 없는 것처럼
나고 죽고 오고 감도 이와 마찬가지일세.

그러한 속에 한 물건이 오롯하게 있어서
고요하여 생사와 거래를 따르지 않는다네.

오호라 이것이 무엇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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