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 1985, 러시아 1911, 캔버스에유채, 192x151cm, 뉴욕, 현대미술관

올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는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눈이 별로 오지 않은 겨울이었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로 시작되는 김춘수의 시와 함박눈이 생각나는 3월이다. 몇 해 전 겨울도 눈이 적었고, 아쉬운 마음으로 2월 달력을 뜯어내며 “이제 봄이구나”했는데 창밖에 함박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봄을 기다리던 새순은 갑자기 눈 벼락을 맞았다. 날이 따뜻해져서 곧 녹았지만 산골 우리 집에서 보는 경치는 겨울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겨울이 끝나갈 때 쯤 이면 정말 볼 품 없는 메마른 풍경을 보게 되는데, 깜짝 눈이 내려 또 한 번 나무와 산을 하얗게 덮어 모습을 감추고 곧 올 봄을 시샘한다.

김춘수 시의 창작재료가 되었을 그림 중에 하나인 <나와 마을>은 샤갈이 파리에서 작업하던 시절에 그의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를 추억하며 그린 것이다.

흰 염소와 초록색 얼굴의 나는 화면의 중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웃하는 초록, 빨강, 파랑의 강렬한 색채와 대각선구도는 염소와 초록색 얼굴에 더욱 눈이 가게 한다. 둘은 친밀한 시선으로 연인처럼 서로 바라본다. 자세히 보면 가는 실선이 둘의 눈동자를 연결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도 염소 두 마리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우리 삼남매에게 먹이려고 닭과 염소를 길렀다. 부지런한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이나 퇴근 후에는 그들의 먹을 것, 풀을 구하러 다니셨다.

달걀과 염소젖은 우리의 간식이며 영양식이었고, 꼬꼬와 음매는 우리의 친구이며 장난감이었다. 염소에게 풀을 주며 주절주절 얘기하는 꼬마와 맛있게 먹는 염소는 눈을 마주보며 은밀하게 둘의 얘기를 공유했다.
샤갈과 염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샤갈은 그가 기억하거나 꿈에 찾아간 고향마을의 하늘, 집, 사람, 나무를 추억하며 그리움을 풀어간다. 무중력의 거꾸로 된 집과 사람은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靜脈(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靜脈(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數千(수천) 數萬(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붕과 굴뚝을 덮는다.
三月(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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