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연구년으로 1년간 일본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현지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던 일본인이나 일본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해프닝 3가지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나는 사진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에 갈 때 4×5Cm 규격과 3×4Cm 규격 등 여러 장의 사진을 준비해 갔었다.

혹시 필요할 경우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면허증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하게 되어 사용하려고 하니 2.5×3Cm 규격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3×4Cm 규격의 사진을 조금 잘라내고 제출하여 쉽게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제출한 사진에는 수염이 없어 실물과 다르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에 간 뒤로 수염을 길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500엔을 들여 새로 사진을 찍어서 제출했다. 수염 값으로 500엔이 더 든 셈이다.

다음은 이름 때문에 있었던 해프닝이다. 내 이름의 우(雨) 자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나는 우(雨) 자를 쓸 때, 가운데 들어가는 획 네 개를 점으로 찍지 않는다. 왼쪽의 두 획은 하나는 왼쪽 위에서 가운데를 향해 아래로 빗기어 찍고, 다른 하나는 왼쪽 아래서 가운데를 향해 위로 삐쳐서 쓴다.

오른쪽의 두 획은 하나는 오른쪽 위에서 가운데를 향해 아래로 삐쳐서 쓰고, 다른 하나는 가운데에서 오른쪽 아래를 향해 빗기어 찍는다.

그렇게 써서 서류를 제출하였더니 바로 직원이 쫓아왔다. 사전의 우(雨) 자와 모양이 다른데, 다른 글자가 아니냐고 묻는다. 같은 글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찾아와서 묻고 확인하기를 반복한다. 결국은 사전의 우(雨) 자와 똑같이 네 개의 점을 찍어 주고서야 그 직원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작은 획 하나 때문에 금쪽같은 시간을 30분 이상은 잡아먹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와는 비교가 불가한 그야말로 해프닝의 결정판이었다. 오후 1시쯤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면허증이 나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간단한 소양교육을 받으면 된다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직원이 와서 말하기를 새 면허증에는 자동변속기 차량만 운전이 가능한 것으로 한정되었는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수동변속기 차량도 운전 가능한 면허증으로 발급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수동변속기 차량은 운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괜찮다고 하여 돌려보냈다.

그런데 한참 뒤에 그 직원이 다시 왔다. 자동변속기 차량만 운전 가능한 것으로 한정된 면허증에 이의가 없다는 서약을 해달라고 한다. 나는 결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서약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 직원을 돌려보낸 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서약서를 작성해 주지 않은 것은 대실수였다. 지금까지 겪은 정황으로 봐서 시간만 더 걸리게 되었을 뿐, 결국 서약서는 쓰게 될 것이다.

그 직원은 고객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서약서를 쓰지 않았는데, 그렇게 면허증을 발급해도 되는가에 대해 회의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약서를 받기 위해 다시 올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와 같았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상은 어긋나는 법이 없다. 20분쯤 지나자 그 직원이 다시 왔다. 아니나 다를까 자동변속기 차량만 운전 가능한 것으로 면허증을 발급해도 이의가 없다는 서약서를 작성해 달라고 한다.

나는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고 서약서를 작성하여 주었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양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간신히 일본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아하 여기가 과연 일본이구나! 일본인은 정확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정확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예를 들자면 아마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을 지도 모른다. 적당한 선에서 대충 일을 처리해 버리고 마는 한국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어쨌든 그때 나는 이런 해프닝을 통해 좋고 나쁘거나 옳고 그르다는 가치판단을 떠나 한·일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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