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근(사)한국예총 충청남도연합회장

신록이 무르익는 계절 5월 사무실 창밖으로 시원하게 들어오는 공산성의 풍경은 대중가수 송창식씨의 노랫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다.

그 눈부신 푸르름 속에 고즈넉이 들어서 있는 금서루의 모습은 뚜렷하지 않은 단청의 색감이 오히려 퇴색한 성곽의 검은 빛깔과 어우러져 그나마 백제 고성의 면모를 지키고 있다.

옛 고서인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보면 “검이불누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표현이 나온다.

백제의 미학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말로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는 이 표현을 백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감을 대표할 만한 명구라고 했다.

나 역시 출근하면 눈앞에 들어오는 공산성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한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민족성과 성향, 그리고 가치관과 철학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한 시대 문화의 산물은 우리에게 궁금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도 간다라미술의 불상들을 보면 불상의 얼굴인 상호와 손의 모양인 수인 그리고 옷의 주름을 표현하는 의살의 섬세함이 팔등신 미녀와 같이 날렵하고 화려하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간다라 미술이 서방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이는 당시 당과 서역, 인도의 외래양식을 수용했던 통일신라 불상의 모습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백제의 불상을 어떠한가?

우리는 흔히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는 국보 84호 서산마애삼존불을 쉽게 연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넉넉한 얼굴에 빙그레 웃는 불상의 염화미소는 영락없이 삼국사기의 표현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며칠 전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공주시가 표방하는 두근두근 공주처럼 가슴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이코모스라는 민간기구에서 평가보고서를 제출한 유산들이 지금까지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하니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백제유적지구는 우리 지역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을 포함하여 부여 관북리 유적,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 그리고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까지 8개 유적으로 7월 8일 최종 결정된다고 한다.

그 동안 수십 년의 시간을 거치며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한 결실을 맺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난 뒤의 활용방안과 지금까지의 백제문화를 알리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안목으로 중장기 발전 방향을 서둘러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패망의 제국이었지만 신라 황룡사구층목탑의 백제 명공 아비지와 불국사 석가탑의 아사달 그리고 일본 아스카와 나라에서 꽃이 핀 일본의 고대문화 중심에는 백제계 도래인들이 있었다.

나는 20여 년 전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 복원작업을 하면서 백제인들은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수준 높은 정신세계와 미학적 예술품들을 만들어 낸 백제인의 후예라는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년 열리는 백제문화제에서 이러한 훌륭한 백제문화의 정수들이 많이 보이질 않아 아쉬움이 남을 따름이다.

이제 사유의 시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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