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토요일 오후, 공산성 곰탑무대에서 재현된 백제기악 ‘사마의 꿈'.

오공이 왕위에 오르고 사랑하는 오녀를 다시 만나 무희들과의 흥겨운 춤사위가 펼쳐지면서 무용극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어 출연진 모두가 무대에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올리며 자연스럽게 신명나는 대동 춤인 탁무(鐸舞)로 이어졌고, 배우와 관객들이 덩실덩실 하나가 되어 군무를 이루었다.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데 어우러져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흥에 겨운 어깨춤으로 이어갔다. 춤판은 그렇게 한동안 계속되었다.

춤사위가 조금씩 잦아들 무렵 백발의 노인 한분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쪽으로 다가서자 함께했던 사람들이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고 순간 주변은 잠시 고요와 정적이 흘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늘 공주시민 모두가 이 자리에 함께한 것 이상으로 깊은 감동과 감명을 받았습니다. 무대 위의 저 사람들은 마치 백제시대 때 백제의 춤을 추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 환생하여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게 합니다.’

그 노인은 바로 1,400년 전 백제인 미마지가 일본에 전했던 백제기악을 재현하기위해 80평생을 외길을 걸어온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었다. 선생의 목소리는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에는 긴 기다림에 대한 갈망이 목마름처럼 담겨있었다.

‘이 자리에 시와 의회 관계자들이 와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백제시대의 무형유산인 백제기악을 꼭 지켜주십시오.’백제기악을 전승보존 시켜주기를 바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주실 때에는 간절함으로 선생의 목소리는 더욱 떨렸다.

고대 일본의 역사서에는 백제인 미마지가 기악을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백제가면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랜 역사를 탈에 생생하게 각인된 옛 백제의 미마지 탈춤은 분명 1,400여 년 전 일본 열도에 꽃 피웠던 고대 한류가 아니었을까?

일본서기에 의하면 서기 612년에 백제인 미마지가 중국 오나라에서 배운 기악무를 일본에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도쿄국립박물관 수장고에는 미마지 탈춤의 모습을 보여주는 탈이 보관되어있는데 색칠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라고 한다.

일본 연극사를 총망라 해놓은 ‘일본연극전서’첫줄에는 ‘일본 연극의 시작은 백제기악의 전래에서 출발 한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화려한 몸짓과 기교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술 가부키의 뿌리도 결국 백제기악인 셈이다.

일본열도를 열광시켰던 백제가면극은 9세기이후 일본에서도 점점 잊혀져갔다. 한때 열도를 매료시켰던 백제가면극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키가쿠우라는 일본 전통 예능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전통과 뿌리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백제가면극을 복원하려는 움직임 또한 활기를 띠고 있다.

1980년 일본 동대사의 지붕수리를 무사히 끝낸 것을 축하하는 무대에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의 텐리대학교 기악부 학생들이 백제기악을 공연하고 이어 뉴욕 공연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백제기악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부여에서도 수년전부터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주에서는 심우성선생의 부친인 소민선생께서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탈을 국내에서 복원하는 작업을 하였고 심우성선생과 공주대학교의 구중회교수께서는 저술과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백제가면극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한민국 목공예명장 1호인 유석근선생은 지난해 소민선생이 제작한 탈과 각종 문헌을 참고하여 총 24종의 탈을 1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시켰고, 백제춤전승보존회장인 공주대학교 최선교수는 수개월의 준비 끝에 제자들과 ‘사마의 꿈’이란 주제로 백제춤을 재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백제의 춤‘사마의 꿈’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마의 스토리를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개하면서도 흥미와 이끌림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무용극으로 새롭게 구성해 많은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세계 유수의 관광지에서 공연하는 그 어느 것에 빠지지 않을 예술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인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시점에서 가능하다면 공산성 성안마을이나 무령왕릉 주변에 상설공연장을 마련하여 앞으로 공주를 찾을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로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역사와 교육·문화 그리고 예술이 공주시의 미래는 좌우할 것 이라는 게 평소 필자의 지론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는 자주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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