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명석 세종교육연구소장

휴대폰의 주소록을 보다보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한때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고, 잠깐 스쳐간 인연도 있고, 이제는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이 친구는 어찌 지내나 싶어 통화 버튼을 눌러보면,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는 조만간 점심이나 먹자는 약속으로 만남을 다짐한다.

그러나 점심이나 먹겠다는 이 작은 약속을 실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저 영혼 없는 언약 일 뿐이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중요한 약속을 할 때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마음을 다지며 서로의 엄지를 꾹 눌러 도장을 찍었다. 손가락을 거는 일이 대단한 형식은 아니지만 어린 마음에 그 순간은 꽤 엄숙하고 의미 있었던 것 같다.

그 잠깐 사이에 일어나는 마음의 감정은 따뜻하고 진실 된 것이어서 그렇게 약속 한 것을 어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약속에는 어릴 적 손가락을 걸고 하는 애교 있는 약속도 있고, 남자들의 의리와 절개를 다짐하는 삼국지의' 도원결의'같은 맹세도 있다.

후한 말에 환관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지방 호족들의 횡포가 심해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유비, 관우, 장비 가 복숭아밭에 모여 어지러운 나라를 구하기로 맹세를 한다.

공적으로는 군주와 신하로, 사적으로는 의형제의 연을 맺어 대장부들의 충의를 굳은 약속으로 지켜나가기로 하는 '도원결의'는 삼국지를 열어젖히는 관문이자 내용 전반을 관통하는 뼈대로 끊임없이 다시 쓰여 지고 재해석 되고 있다.

뜻있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합심 할 것을 결의 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중국인들 사이에는 모범으로 널리 쓰여 지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하며 살아간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웃과 직장 동료들과의 여러 가지 약속들, 그리고 나 자신과의 약속도 포함된다.

건강에 대한 걱정 없이 수년을 지내다가 어느 날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 뜻밖의 우환으로 집안 분위기가 바뀌었다. 온 가정이 우울해지고 무슨 행사를 하던지 위축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환자실에서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음식물조차 삼키지 못 하실 때 얼마나 애처롭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이대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아 차 싶어 돌아보니 옆에 모시고 살면서 자주 찾아뵙겠다고, 된장찌개라도 끓여놓고 자주 얼굴 마주하며 한나절이라도 따뜻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리라던 맘속의 약속을 잘 지켜내지 못했다.

한때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 간에 서운한 일로 마음을 애태운 적이 있었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되지 않던 것이 시간의 언덕을 넘어 경험의 고갯마루에 섰을 때 비로소 혼란하고 절박했을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다행이 어머니는 우리에게 마지막 효도의 시간을 주시듯 강한 의지로 빠르게 회복해 가고 계신다.

이제 어머니의 남은 날을 곁에서 지키며 못 다한 효를 실천하리라 마음으로 다짐을 해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약속으로 관계가 성립되고, 신뢰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약속도 반드시 지키며,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지 않는다.

약속은 나의 신용도와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성실함과 신의를 군자의 덕목이라 했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알 수 있고, 어려움을 만나고 이해득실에 처해보면, 진정한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어떤 일에 분명한 약속을 하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상대방이 모른척하거나 오리발을 내밀면 배신감과 함께 신의를 저버린 일에 대한 분노를 지울 수 없었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면 인간관계는 멀어지고 서먹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함부로 말을 하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 말 한대로 실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실천 못할 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행 하려는 뜻이 없다는 것  이다'라고 약속한 말의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아무리 복잡다단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더라도  손가락 걸고 하는 어린아이들의 작은 약속부터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 지도자들 까지 사소할 수 있는 약속도 성실하게 지킬 것을 실천함으로서 신뢰가 근간이 되는 아름다운 사회로 만들어 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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