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3년 2월 대학 졸업 후 3월에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교사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의 임용시험을 치러 합격을 해야 하지만 그 당시는 교직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사범대학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 주었고, 대신 졸업 후 4년 동안 의무적으로 교직에 종사하게 했었다.

이를 어기면 교사 자격증을 박탈하고, 면제 받은 등록금을 국가에 반환해야 했다. 따라서 머리는 좋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전국에 3개밖에 없는 국립사범대학에 많이 진학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올해 8월 말로 42년 반이나 되었다. 그리고 법에 따라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중학교 교사 2년, 고등학교 교사 10년 반, 대학 교수로 30년을 근무했다. 얼추 헤아려 보아도 나에게 수업을 받은 사람이 수천 명을 넘을 것 같다. 그들 중에는 국회의원이나 시장 등의 정계를 비롯하여 교육계, 경제계, 문화계 등 여러 곳에서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대학에서 30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은 거개가 중등학교에서 국어 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제자가 가르친 제자는 물론 또 그 제자의 제자가 대학에 들어와 내 가르침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 의해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한 부분이 채워지고 있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함께 보람도 크다. 42년의 교직 생활을 되돌아볼 때 이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사범대학은 교사 양성의 목적 대학이기 때문에 일반 대학과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임용시험 출제의 보편적 공통성 때문에 해마다 같은 내용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대학의 교수들처럼 새로운 연구 내용을 교수하거나 실험적 성격의 과목 개설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교수로서의 의무인 연구 분야 실적 평가에 이런 점을 감안해 주지도 않는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나는 일찍이 전공인 현대소설 이외에 국어교육 분야에도 눈길을 돌려 현재처럼 지원도 되지 않던 시절에 호주머니 돈을 털어가며 10여 개의 학회에 가입하고, 전국 각 대학에서 열리는 학회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 결과 7차 교육과정 검정 교과서 심사위원, 교사 임용시험 출제위원, 2007개정 교육과정 자문위원 등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대학에서 근무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두 가지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7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국어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과에서도 네 명의 교수가 이 작업에 참여하여 검정 교과서 집필 작업을 했다. 중등학교 교사 8명과 함께 집필한 이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하여 2011년부터 연차적으로 중학교 학생들에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침 교과서를 만든 곳이 국어 참고서 전문 출판사이기도 했지만 우리 학과의 전통과 명성이 널리 알려져 전국 중학생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이 교과서로 국어 공부를 했다.

 아쉬운 것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교육과정을 바꿔 이 교과서의 생명이 4년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학과의 대외적 홍보와 아울러 저력과 역량을 발휘한 일로 여겨져 큰 보람으로 여긴다.

또 한 가지는 주로 우리 학과 출신들로 이루어진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의 학회지 “한어문교육”이 등재 후보지로 선정된 일이다. 역대 많은 선배 회장님들이 염원했던 이 일이 성사되지 못해 안타깝던 차에 내가 학회의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다.

2년의 임기 중에 반드시 이 일을 성사시켜야 하겠다는 결심 끝에 두 분의 총무 이사와 함께 세세히 전략을 짜고, 부족한 자금은 사비를 털고, 여러 학회 활동을 통해 안면을 익힌 저명한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2년 임기 막판에 등재 후보지 판정을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우리 학과 대학원생들과 졸업생들이 많은 혜택을 보게 되었으니 실로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년을 맞는 감회를 묻는 분들에게 ‘시원섭섭’이란 답변을 했다.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함과 한편으로는 수십 년 몸에 밴 일을 놓아야 한다는 서운함이 교차한다. 그리고 많은 분들께 감사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이다.

할 줄 아는 게 학생들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재주밖에 없다. 그런데도 40년 넘게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용인하고 참아준 가족들이 고맙고, 또 국어과 전 현직 교수님, 선후배 동료 교수님, 함께 활동했던 여러 단체의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그동안 혹시 나에게 서운하고 섭섭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모두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 사죄드린다. 아울러 앞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가능한 한 기꺼이 참여하며 살 생각이니 불러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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