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역량은 어디까지 일까. 예술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 독자에게 그리고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개인적으로 그 보다 더 중요한건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거나 삶에 적용하고 발전시켜 나가려고 고민한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 뿐 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책장을 덮고 파묻히는 책보다 자꾸만 돌아보게 하는 답 없는 책이 좋다. 그런 면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최고다.

대학시절 지적 허영심에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갔던 2막으로 구성된 희곡의 원제는 「En attendant Godot」이다.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시시포스가 신의 형벌을 받아 평생 바위를 산 정상을 향해 밀어 올리는 것처럼,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 동안이나 오지도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

이를 통해 베케트는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를 내리고 이런 기다림 속에서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도자기는 기다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자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인고의 기다림이다. 흙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지막 가마에서 작품이완성 되어 나올 때까지 나의 심정은 절대 오지 않는‘고도’를 기다리는 희곡의 두 주인공의 절박함 그것 이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도자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내 작품의 기본 제작 기법은 슬립캐스팅(slip casting)으로 석고로 만든 주형에 이장(泥漿)을 부어 만드는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는 요업생산의 한 방법이다. 하지만 기계적인 공장제품과 구별하여 나는 핸드캐스팅(hand cas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다.

석고 틀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손맛이 느껴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같은 크기의 접시지만 하나하나 다른 점, 선, 면으로 각기 다른 조형언어를 표현하고 싶었다.

향로의 문양역시 캐스팅으로 뽑아낸 뚜껑에 각각 다른 투각기법을 이용하여 형태는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향기를 낼 것 같은 이미지가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포인트다.

▲ 香 100×100×150 mm / Porcelain,Slipcasting

다시 앞의 책으로 돌아가‘고도’라는 인물은 끝내 등장하지 않고 단지 소년 전령을 통해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만 보낼 뿐이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베케트조차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치기어린 젊은 시절, 아무것도 확실함이 없던 그 시절부터 오늘 까지 내 작업노트의 화두는 기다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절대 오지 않을 것 에 대한 기다림이다.

가마 문을 열 때 마다 희곡의 주인공처럼 오늘은 꼭, 이번엔 꼭. 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곧 절망은 아니다.

오늘도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나는 석고 틀에 흙물을 부을 것이며 다시 가마에 불을 넣어야하고 그리고,  그 다음 날이 있는 한 블라디미르의 대사처럼 “고도를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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